묵상자료 4384(2013. 5. 18. 토요일).

시편 시 91:1-3.

찬송 79.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늘 침대에 누워있는 소녀 마리아를 보면서, 어린 주인공 소년은 또 생각합니다. “난 그녀 혼자서만 고통을 겪지 않고, 함께 고통을 나눌 수 있도록 내가 그녀의 고통 일부를 떠안아야 할 느낌이 들었다.” 사랑이란 어린 가슴에도 얼마나 자연스럽고도 대단한 결심을 하게 하는지요. 더욱이 그 결심은 의지로부터 비롯되지 않습니다. 그냥 저절로 생기고 저절로 강해집니다. 문득 우리의 한 소설도 떠오릅니다. 그렇게 병에 걸려 늘 생명이 위태로운 소녀에 대한 사랑의 이야기.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입니다. 물론 <소나기> 속의 소녀는 그 즈음에서 세상을 떠났지요. [독일인의 사랑]속 아픈 소녀는 여인으로 성장해 청년이 된 소년과 재회합니다. 그 재회 역시 그녀의 죽음으로 끝이 나긴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소년이나 청년의 첫사랑을 다 영영 떠나버리게 하는 건, 꼭 현실적인 병만은 아니지 않을까요? 그건 상징적으로 어린 시절 어렴풋이 겪는 첫사랑은, 지상에 속한다기 보다는 천상에 속한다는 것. 그런 만큼 소년 소녀기의 사랑은 유일하게 비현실적이고도 순수한 사랑이라는 상징. 어린 시절의 첫사랑, 그 위대한 추억에 고마워해야 할 것 같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3315일 방송>b.

 

2.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때문에 서로의 마음속까지 나눌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같은 문화를 가지고 같은 말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벽처럼 마음은 고사하고, 말문까지 콱 막히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상대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선입관이 작용을 해서, 대화가 막히는 경우가 생기는게 아닌가 합니다. 부부 사이에 잦은 말다툼을 하는 경우를 보면, 이런 문제들이 작용을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 주변의 사람들 가운데는 예수님의 치유 기적을 보면서 이상한 말을 지어낸 것입니다. 벙어리인 사람을 고쳤는데, 당시로써는 이런 질병들은 모두 귀신이 붙어서 생긴 것으로 이해했으며, 실제로 주님 역시도 붙어 있는 귀신을 내쫓는 방식으로 치유하셨습니다. 그러자 무리들 중에서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어서 축귀(逐鬼)하게 되었다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러니까 힘센 귀신이 약한 귀신을 몰아냈다는 식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까닭은 예수님을 신접한 무당으로 간주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주님은 설득하십니다. 귀신끼리 싸움질 하는 것이면 되겠느냐고. 그게 아니라, 하나님의 손을 빌어서 귀신을 쫓아낸 것이라고 말입니다. 귀신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눈을 돌리게 하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의 모든 문제도 이런 시각에서 출발하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이 경제 문제이든 정치 문제이든, 아니면 개인 간의 관계이든 말입니다. 모든 문제에는 나름의 속사정도 있고, 매듭진 크고 작은 앙금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풀어보려고 애쓰는 것이 더 큰 문제로 발전할지도 모릅니다. 시비를 따지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이럴 때 주님이 본보이신 방법을 따라보자고 말입니다. 문제 자체에만 주목하지 말고, 하나님께로 방향성을 돌려보자고 말입니다. 주님, 주님이 오십시오. 그리고 제 마음과 그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십시오. 주님만이 건강한 해답을 알고 계십니다.

 

3. 모과 나무도 해갈이를 하는 모양입니다. 작년엔 한 개도 열리지 않았는데, 올해는 꽃이 많이 피었습니다. 홧김에 자르지 않고 잘 참아주었다며 상을 주시는 모양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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