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386호 (2013. 5. 20. 월요일).
시편 시 91:9-12.
찬송 8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란 몇 살쯤일까 생각해 봅니다. 줄리아 마가렛 케메론의 사진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다 딱 그 순간에만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은 눈빛과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단 1초라도 늦거나 빠르면 영원히 볼 수 없을 것 같은 표정들이지요. 그런 사진들로 즐리아 마가렛 케메론은 표현력이 강한 그녀만의 특별한 초상 사진을 창조했습니다. 그런가하면 케메론은 남녀의 초상 사진을 찍을 때 독특한 차이를 뒀습니다. 즉 여자들이 주인공인 사진에는 환상성을 가미했고요. 남자가 등장하는 사진에는 정확한 현실감을 더욱 많이 강조했습니다. 그런 차이는 그녀를 더욱 개성적인 유일한 사진 예술가로 기록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진작가 줄리아 마가랏 케메론이 사진을 시작한 것은요, 그녀의 나이 49세 때였는데요. 쉰 살을 목전에 둔 나이였지요. 아이를 여섯이나 둔 결혼 생활 27주년의 전업주부일 때였습니다. 케메론은 1815년 인도 칼카타에서 태어나서 프랑스인 상류층 부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나서 프랑스의 할머니 손에서 자랐지요. 그러다가 19살 때에 다시 인도로 돌아가서, 23살에 시민운동가였던 찰스 헤이 케메론과 결혼했습니다. 결혼 후에는 다시 영국으로 와서 전형적인 프랑스 주부의 역할을 했지요. 한 책의 묘사에 의하면 멋진 저녁을 차리고 작가나 예술가와 어울리고, 선행을 베풀고 아이 여섯을 낳고 취미삼아 시도 쓰는 그런 역할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역할을 다하고도 줄리아는 외로웠습니다. 남편은 인도에 머무는 시간이 길었고, 아이들은 다 자라서 집이 텅 비었으니까요.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3년 2월 18일 방송>a.
2. 본문에는 4개의 일화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오늘 저는 <요나의 표적>에 대한 예수님의 설교를 묵상하려고 합니다. 잘 아시는 대로 요나의 표적은 죄악의 도시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잘 그려낸 이야기입니다. 요나서를 통해서 선민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온 세상을 사랑하실 뿐 아니라, 온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분명한 의지를 엿보게 한다는 점에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유대인만 구원하신다거나, 기독교인만 구원하신다는 배타주의는 잠깐 고려해 볼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설교의 배경은 당시 많은 사람들이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16절) 구하고 있는 것에 대한 대답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주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말입니다.
요나의 표적이란 하나님의 명령을 실행하지 않고 도망가는 요나를 3일간 큰 고기 뱃속에서 머물게 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회개하는 기도를 들으시고 다시 토해내게 해서, 니느웨에 회개를 선포하자,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신다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적이야기만이 아니었습니다. 훗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예표가 되었고, 동시에 그 배후에 있는 넘치고 넘치는 강물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게 하는 말씀이라고 말입니다. 요나의 표적 뿐 아니라, 오늘 우리 세대가 우리들 삶에 곳곳에 스며있는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을 바로 볼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따뜻하고 생기 있을까, 지금 혹시라도 삶과 사람에게서서 지쳐 있거나, 희망의 끝을 헤매는 분들이 있다면, 요나의 뒤에 서 계신 주님을 가만히 바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의 치명적인 문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데 있는게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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