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500(2013. 9. 11. 수요일).

시편 시 119:5-8.

찬송 81.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대학졸업반은 고3 못지않게 진로문제로 스트레스가 큽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어엿한 사회인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부담이 가장 크겠지요. 한 학생이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저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그런데 저에게 작가로써의 재능이 있을까요?” 그 말을 풀자면, 자신이 작가로써 먹고 살 수 있겠느냐 일 텐, 누군들 그 답을 알 수 있을까요? 그저 5살짜리 아이 엄마가 우리 아이가 음악에 소질이 있을까?” 물었을 때 해 줬던 말과 똑 같이 답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해봐.” 많은 사람들이 재능을 무슨 숨겨진 보물이나 비밀처럼 생각하지만요, 작가 헨리 밀러가 말했지요. “비밀 같은 건 없어. 진실만 있지.”

   재능이 있다 없다로 판명나는 그런 진실이 아닙니다. 끈질기게 노력하지 않으면, 그리고 그것을 매일 반복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는 진실입니다. 이 진실을 깨우치고 나면, 재능의 정의가 조금 달라집니다. 그 전에는 재능을 하늘이 준 특별한 선물 같은 것으로 여겼는데, 자신이 꼭 하고 싶은 것, 매일 하고 싶은 것, 죽을 때까지 그러고 싶은 것으로 바뀝니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면, 세상에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믿음입니다. 얼마 전에 한 교육 전문가가 하는 말을 듣고 무릎을 탁 쳤습니다. “많은 학부모들이 자신의 자녀가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해서 못한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머리 좋은 학생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게다가 그 머리 좋은 학생들이 모두 공부를 잘 하는 것도 아니다.” 재능도 비슷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진로를 앞에 두었을 때, 그 화두(話頭)는 재능이 있느냐 없느냐 보다, 그 일을 꼭 하고 싶은가 아닌가? 안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가 일 테고. 결국은 그 말이 그 말입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822일 방송>

 

2. 요즘 인기 있복음 가들을 보면, 오래 전에 신학생 시절에 배웠던 신흥종교의 기류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신흥종교는 <신인 합일체>라는 신비현상을 많이 강조하고 있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같은 범인들로써는 가당치도 않는 어떤 신비한 일들이 그들 사이에서는 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 하나가 예수님의 마음이나 하나님의 마음을, 자신들이 갖고 있는 듯 믿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얼마나 기특한 생각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얼마나 불손한 생각입니까? 제가 가장 궁금해 하는 것 중 하나가 제 아내의 마음인데, 도대체 그 마음을 이해하려고 해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될 때가 너무 많아서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말입니다. 40년도 훨씬 더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알 수 없는 아내의 마음도 살피지 못하는 주제에, 하나님의 마음이나,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이냐고 말입니다.

   그런데도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또 갈등을 느낍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서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명령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과연 이 말씀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것일까? 첫째는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가 품고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인가 라는 물음과, 둘째는 과연 예수님의 마음을 품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을 없애야 한다는 말인가 라는 물음을 가져보자는 생각입니다. 어쩌면 이 두 가지 물음은 결국 하나일지 모르겠습니다. 사도는 우리의 마음과 예수님의 마음을 확연하게 구별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따로 국밥 같은 것이며, 사랑 없, 뜻이 다르고, 제 각각이며, 다툼과 허영기가 있고,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만족적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 예수님의 마음은 이런 우리의 마음과는 거의 정반대편에 있는 것들이라는 점만으로도, 분명히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서 훨씬 더 높이 점프해서, 하나님 자신이시고, 하나님의 자리에서 가장 비천한 자리로 내려오실 뿐 아니라, 가치 없는 인생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마음이 되셨으니, 이젠 도무지 쳐다볼 수도 없는 너무 먼 거리감이 있는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사도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이런 사실을 분명히 밝히면서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하는 것은, 그게 가능해서가 아니라, 그 마음을 짐작만이라도, 가까이 다가서 보라는 뜻이 아닐까?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그 돼먹지 않은 우리들의 마음을 더욱 더 절망적으로 느껴 보라는 뜻은 아닐까? 그 참된 목적은 우리 의지나 노력으론 결코 주님의 마음에 이를 수 없음을 고백하며, 오직 주님께서 이런 우리를 붙잡아 주실 필요있음을 절실히 알라고 말입니다.

 

3. 저의 첫 묵상자료는 2000108, 찬송 68, 본문 잠언 21:26, 제목은 두 욕망의 차이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동안 잘 참고 읽어주신 묵상식구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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