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511호.
시편 시 119:49-53.
찬송 47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1945년 2월 독일의 유서 깊은 도시 드레스덴이 폭격을 받았습니다. 작센 왕국의 수도였던 바로크 시대의 문화유산은, 이날의 화재로 많은 피해를 입었는데요. 이후 폭격 현장에 인부들이 투입돼서 일을 하게 되지요. 한 남자가 이곳을 지나면서 세 명의 인부에게 물었습니다. “거기서 뭐하세요?” 첫 번째 인부가 말했습니다. “안 보여요? 돌 치우고 있지 않아요?” 두 번째 인부는 대답합니다. “돈은 벌고 있지 않아요?” 그리고 마지막 인부는 이렇게 말하지요. “교회를 다시 짓고 있습니다.” 노동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하는 말인데요. 삶에서 중요한 일에, 여러분들은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계신가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년 6월 30일 방송>
2. 흔히 신앙인을 일컬어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란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삼신 할멈에게 정한수를 바치고 절하는 식의 기도나, 주문을 외우듯 하는 무당식 기도는 성경이 가르치는 기도와는 많이 다릅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지 분명히 배워야 합니다.
사도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권합니다(1절).
흔히 불가(佛家)에서는 세상의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기도하라고 가르칩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은 일단 훌륭한 신앙 태도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의 개념이 명확치 않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그 근본 바탕인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 대상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라는 데 가장 큰 보증이 됩니다. 오늘 사도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것을 가르칩니다. 자기 가족과 민족만이 아니라, 온 세상과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여기에는 병든 자와 건강한 자, 가난한 자와 부자가 다 해당이 됩니다. 힘 있는 자와 연약한 자, 친구와 원수도 포함됩니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가 다 하나님이 보살펴야 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때문입니다.
사도는 왕들과 권세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권합니다(2-3절).
이 구절과 함께 롬 13:1-7은 자칫 오해 받기 쉬운 말씀입니다. 마치 기독교 신앙이 권력자들에게 아첨하는 인상을 주는 때문입니다. 실제로 어떤 독재자는 이 구절을 악용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는 권세 자들의 영향력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 지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의 한 마디 말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도 그런 이들에게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권세 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세상이 얼마나 불행해 질지, 그리고 우리들의 신앙생활 또한 얼마나 힘들고 슬플지를 잘 알고 있는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권력자들이 되도록 기도할 이유입니다.
사도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아야 하기 때문에 기도하라고 권합니다(4-7절).
구원받지 않아도 될 인생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죄와 죽음 아래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중요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분명한 까닭입니다. 복음을 듣지 않는 한 죄와 죽음의 수렁에서 자유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사람들은 죄와 죽음에서 벗어나는 것을 잘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오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이라는 생각도 그런 경우입니다. 이성과 도덕에 매달리는 한, 인간은 더욱 더 절망할 뿐입니다. 이런 우리를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세울 수 있는 사람은, 우리의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여기에서 사도가 말하는 기도는 우리의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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