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606호(2019. 6. 18. 화요일).
시편 18:23-27.
찬송 86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두려워하는 한 가지 일을 매일 해라.” 어느 해의 여름이 생각납니다. 어느 날 문득 수영을 떠올렸었습니다. 더워지는 날씨에 바다가 그리워서가 아니었습니다. 바다에 간들 수영은 하지도 않을 것이며, 하고 싶은 적도 없고 해 본적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수영을 떠올린 건 날씨나 계절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흔하게 하는 일인데, 나는 두려움 때문에 평생 제대로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일, 그런 일을 한 가지쯤 해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인생을 위해 용기를 내 보고 싶었고, 모처럼 낼 수도 있겠다, 내자 싶었던 거지요. 그러니 수영장에 갈 때마다 스스로에게 감격했었습니다. 나 참 대단하네. 이젠 그 어떤 것도 못할게 없겠네. 저절로 자신에게 칭찬이 나가곤 했었지요. 그런데도 반년을 못 채우고 중단했지요. 그래도 이게 어딘가 뿌듯했습니다. 이번 여름에도 그 용기를 다시 내서, 수영만큼이나 두려웠던 것에 도전해 볼까 합니다. 단, 무엇에 도전하든 에머슨 할아버지께 미리 양해는 구해야 하겠지요. “전 무엇이 됐든 매일 하지는 못해요. 수영 다닐 때처럼 일주일에 한 두 번만 할 수 있고, 하다가 대여섯 달 만에 그만 둘 수 있어요. 그래도 시도한 것만으로도 잘했다고 해 주세요.” 양해를 구하면서 오늘은 미국의 최고의 사상가중 한 명으로 꼽히는 에머슨의 한 마디, “당신이 두려워하는 한 가지 일을 매일 해라.” 이 한마디에 물들어 봅니다. <KBS FM 1 가정음악 2019. 6. 16. 방송>
2.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예수(10-17절)”를 읽었습니다. 소위 안식일 논쟁으로 불리는 이 심각한 이야기는 4복음서에서 모두 취급하는 내용 중의 하나입니다. 그도 당연한 것이 예수님이 다른 날 보다는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이 많았고, 그 때마다 병자들은 더 많이 몰려왔을 테니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어느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실 때 18년 동안 허리를 펴지 못하는 병에 고생하는 한 여인이 무리 중에 있는 것을 보신 것입니다. 주님은 그가 병을 고쳐달라고 구하기도 전에 그녀에게 “네 병이 이미 너에게서 떨어졌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녀에게 손을 대셨습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즉시 허리를 펴게 되었고, 하나님을 찬양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회당장이 시비를 걸었던 것입니다. “일할 날이 일주일에 엿새나 있는데, 그 엿새 동안에 병을 고쳐야지 안식일에는 안 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외양간의 소나 말에게 안식일에도 물을 주는 것을 예로 들면서, 이 여자도 아브라함의 자손인데 18년 동안이나 사탄에게 매여 있었는데, 안식일이라 하여 그대로 묶어 두어야 하느냐며 그를 깨우쳐 주신 일화입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주목할 문제는 관점의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병들어 고생하는 사람의 부자유한 삶과 고통에 주목하셨습니다. 회당장은 안식일에는 무조건 일하지 말고 가만히 지내야 한다는 율법 조문에 주목한 것입니다. 둘의 관점은 모두 다 정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회당장의 관점은 응용력 내지는 적응력이라는 점에서 크게 모자라다 하겠습니다. 그는 율법의 조문에 매달리기 전에 그 율법의 정신에 주목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은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고 지키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온갖 불법과 무지로부터 사람의 생명은 보호받아야 하고 지켜져야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불쌍한 여인을 바라볼 수 있었다면, 그 역시 고단한 생명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언제나 율법의 정신은 물론이고 그 목적에 충실하셨습니다. 요즘 우리 한국 개신교회 지도자들 가운데는 근본주의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낭패입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아내나 남편의 말도 맥락적으로 들어야 하는 때에, 하물며 성경을 문자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신앙 생활에 막대한 지장을 일으킬 수 밖입니다. 입장 바꾸기라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이 다시금 강조되어야 할 시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중요하고 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눈을 떠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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