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602호(2019. 6. 14. 금요일).
시편 18:8-12.
찬송 370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솔로 타임은 집단에서 잠시 벗어나, 내 몸과 마음 상태를 바라보는 시간, 혼자 있는 시간을 말한다. 솔로 타임을 즐기기 위해서는, 커피숍에서 책을 읽어도 좋고, 여행을 떠나도 좋고, 명상을 통해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다. 그리고 그게 바로 우리가 집단의 가치관이나 평가에서 벗어나, 진짜로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마주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라코시 야수미 라는 일본 정신과 의사가 하는 말입니다. 야수미가 5천명이 넘는 환자들에게서 발견하는 공통점. 소속 집단에 단단히 묶여 있는 사람일수록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불쑥불쑥 찾아드는 공허감을 맞게 된다 였는데요. 즉 외로울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바쁘게 산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것이 아니고, 잠시도 혼자 있을 시간이 없다면, 결코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겁니다. 만약에 야수미 말에 동의를 하신다면, 가족 간에 돌아가면서 솔로 타임을 만들어 주는 약속을 해 보면 어떨까요? 가족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19년 4월 14일 방송>
2. “재물을 하늘에 쌓아라(33-34절)”과 “항상 준비하고 있어라. 충성된 종과 불충한 종(35-48절)”을 읽었습니다. 오늘은 둘째 단락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꿈 많고 열정적이던 10대와 20대, 저는 고민도 갈등도 많았습니다. 과연 지금 공부하는 것들이 내 삶에 도움이 되는걸까? 반신반의하기도 하고 아무래도 헛된 일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도서관이 문을 닫는 시간까지 책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공부하던 책상을 뒤로하고, 밤하늘에 가득 차 있는 별무리들을 바라볼 때면 갑자기 몰아치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온 몸과 맘을 엄습했습니다. 긴 백양로를 걸어 나오며 수도 없이 질문했습니다. 하나님, 지금 하는 일들이 과연 잘 하는 일일까요?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깨우쳤습니다. 어느 한 순간도 헛된 일은 없었다고 말입니다. 삶을 준비한다는 것은 어느 하나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매일 매 순간 우리들 어깨에 메워지는 모든 것에 충실해야 했습니다. 밥을 먹을 땐 먹는 일에, 걸을 땐 걷는 일에, 그리고 예배드릴 때는 예배드림에 충실한 것, 그것이 준비였습니다. 46년 전에 가르쳤던 저의 제자가 확인해 주었습니다. 항상 그러라 강조했었다고 말입니다.
혼인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기다리는 종의 비유와, 집안 살림을 맡았던 종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내용은 다르지만 주제는 같습니다. 주인이 눈앞에 있건 없건 자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라고 말입니다. 대부분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유독 많이 배웠다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법을 좀 안다는 사람들, 세상을 꿰뚫어본다는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반칙을 좋아합니다. 모든 직무에는 똑 같은 규칙이 있습니다. 분수를 알아서 그 직무에 맞게 충실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높은 자리로 올라갈수록, 그 자리가 맡겨진 자리라는 인식 보다는, 아예 자신의 자리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맡겨진 직무를 벗어나서 월권행위를 합니다. 바르게 관리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유 불리를 따라 방향을 트는 겁니다. 아부에 길들은 간신배들로 미리 인의 장막을 칩니다. 자리를 약속하거나 황금이라는 재갈도 물립니다. 그리고 점잖게 우두머리로 자리를 차지합니다. 오늘 본문에서처럼 그들은 주인의 뜻을 잘 알면서도 제멋대로 악행을 저지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의 뜻과 재산을 오용한 사람들은, 반드시 그에 상응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라도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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