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601호(2019. 6. 13. 목요일).
시편 18:4-7.
찬송 486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어딘가에는 신호등이 일터인 사람도 있다/ 교통경찰이 아닌데도 신호등의 빨간불과 파란불이 일터인/ 그들은 세마포로로 불린다/ 스페인어로 신호등을 뜻하는 세마포로/ 그들 방랑자들은 신호등에 파란 불이 들어오면/ 줄지어 기다리는 자동차들 앞에서/ 자신들만의 묘기를 보인다/ 가장 짧은 시간에 최선을 다한 묘기에/ 자동차에서는 동전을 건네고/ 그들은 동전만으로 충분한/ 또 다른 방랑의 길을 떠난다” 가정음악을 위한 시 <세마포로> 함께 해 봤습니다. 신호등이 일터인 세마포로들은 방랑의 삶이니까, 당연히 뭐 소유하거나 집착하는 게 없겠지요. 그리고 신호등이 바뀌기 전까지 아주 짧은 시간에 스스로 갈고 닦은 묘기를 보여주고, 주는 대로 받는 거라서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나 떳떳함도 참 크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보기엔 빈손으로 떠도는 삶 같지만, 그들이 갖고 누리는 자유는 누구도 흉내 내기 힘든 거겠지요. 삶의 방식과 모습은 여러 가지고, 그래서 모두의 인생이 다채로워진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KBS FM 1, 가정음악, 2019년 5월 29일 방송>
2. “어리석은 부자 비유(13-21절)”과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찾아라(22-31절)”을 읽었습니다. 두 단락 모두 묵상하고 싶은 말씀들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첫 단락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세상에는 부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하지만, 본문에서 말씀하는 부자는 상대적인 경우라 하겠습니다. 부자가 없다는 생각은, 그렇게 불리는 사람들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부족함으로 갈증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채워야 할 공간이 마음에도 그들의 창고나 금고에도 너무 큰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가난뱅이가 아닐 수 없고, 불쌍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아주 잘 아는 한 사람은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진짜 부자로 살아갑니다. 그는 자신은 다른 누군가에게 줄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며칠 전 한 지인 내외가 찾아왔을 때 맹사성 대감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행색이 남루한 자신의 처지를 돕겠다며 고을 현감이 찾아와 쌀 열 섬을 넣어주기가 무섭게, 대식구를 거느린 한 촌부가 딱한 처지를 호소합니다. 대감은 주저 없이 조금 전에 받았던 쌀 열 섬을 가져가라 합니다. 대책 없는 부자 코스프레라 하지만, 진짜 부자였습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들의 마음을 찌르는 말씀을 하십니다. 유산을 놓고 형제가 다투다 주님을 찾은 것입니다. 동생은 형을 형은 동생을 비난합니다. 모두가 일리가 있습니다. 직설적인 화법으로는 설득이 어렵다 판단하신 주님은, 한 부자 얘기를 꺼내셨습니다. “이 부자를 보시게나. 그는 쌓을 곳이 없도록 창고자 가득차자, 새 창고를 지었다네. 그리고 그곳에도 가득 곡식을 채워넣었다네. 그런데 그 밤에 그 부자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네. 그토록 아등바등 모아들였던 재산은 어떻게 되겠나? 그런데 이 사람은 사람에게만 아니라 하나님께도 인색한 사람이었네. 결국 그는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가난뱅이로 살 수 밖이었다네.” 그렇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늘 부족하고 모자라고 아직 더 채울 공간이 있다고 안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부자는 언제나 나눌 것이 있는 사람입니다. 콩 한쪽도 나누고, 사랑을 나누고,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부드러운 말 한마디도 나눕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그는 참된 부자로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나는 나눠 줄 것이 많은 사람인가? 아니면 빼앗아서라도 채워야 할 빈 공간이 많은 사람인가?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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