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598(2019. 6. 10. 월요일).

시편 17:10-12.

찬송 414.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냥 저절로 다 되는 과정인줄 알았는데/ 저토록 힘들게 넘어서는 거였구나/ 태어나 몸을 뒤집기까지 며칠을 버둥대고/ 다음엔 엎드려 상체를 일으키느라 며칠이고 코를 바닥에 찧더니/ 오늘은 자그마치 스물여덟 번에의 버둥거림 끝에 마침내 온 몸을 일으키는데 성공하는 구나/ 수없이 맴돌다 마침내 바다 위로 나가는 종이배처럼/ 신기하고 경이롭다 그 모든 단계들/ 아기도 지켜보는 나도 모두가 일어나 걷기까지 저렇게 위대했구나/ 한 살에 도달하기까지/ 다들 얼마나 어렵고 경이로운 단계를 건너오는 것인지/ 오늘은 모든 사람들이 다 보통으로 안 보인다가정음악을 위한 시 <육아일기/育兒日記>였습니다. 아이를 낳고 보면 때로는 아이만 키우는 게 아니라, 내가 아기였던 그 시절을 되사는 것 같은 때도 많지요. 그러면서 아기가 배우고 거치는 단계단계들이 다 나도 그랬었구나. 나도 그랬겠구나. 다른 사람들도 그랬겠구나 싶고, 또 내 아기가 그러는 게 감격스럽듯이, 나도 부모님의 그런 감격을 받았었겠구나.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 존재였겠구나. 모두가 다 위대하고 신기하고 경이롭게 느껴집니다. 가정음악입니다. 한 살을 맞이하는 오늘 아침 제 심정도 저도 여러분들도 다 고맙고 경이롭고 감격스럽습니다. 진심으로요.  <KBS FM 1, 가정음악, 2019528일 방송>

 

2. “되돌아 온 악령(24-26)”, “참된 행복(27-28)”, “기적을 요구하는 시대(29-32)” 그리고 눈은 몸의 등불(33-36)”을 읽었습니다. 모두 따로 따로 하신 말씀을 묶어 놓은 것으로, 오늘은 두 번째 단락 참된 행복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김 흥규 고려대 교수가 쓴 <한국 현대시를 찾아서>라는 시 해설서에서, 김 상용 시인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를 읽었습니다. 그 마지막 연이 왜 사냐건, 웃지요.”라고 맺고 있었습니다. 어설픈 농부 흉내를 내는 저에게는 너무도 이해가 되는 구절들이 많습니다. “밭이 한참 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김을 매지요의 첫 연이나,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서 자셔도 좋소의 둘째 연, 그리고 마지막은 앞에 소개드렸습니다. 빼 놓은 둘째 연에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구름처럼 헛된 세속적 이익이나 명예가 유혹한다 해도 따르지 않겠노라는 결연한 의지가 딱 마음에 들었습니다. 평화로운 전원을 있는 그대로 누리고 싶다는 점에서, 행복이란 바로 이런 거라고 생각해 봤습니다.

   행복이 뭘까 하고 묻는다면, 웃어야 하겠습니다. 지금 여기서 행복을 만나고 있으니 말입니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행복이 멀리 그리고 높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조금만 하면서 쓸데없는 것들을 쌓기만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이런 저런 일들을 겪고 나니까, 행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무탈하게 아침 잠에서 깨어났을 때 행복이 함께 누워있었고,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하고 나니 행복이 마음 속 가득 밀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여전히 헛소리를 합니다. “당신을 낳아 젖 먹인 여인은 얼마나 행복할까?” 라고 말입니다. 그런 행복은 저들 역시 맛보았으면서도 말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행복은 지금 여기서 누리는 기쁨과 감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 자가 행복하다.” 주님의 말씀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삶을 누리는 것이고 즐기는 것이며, 그 삶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되풀이 기억할 이유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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