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616호(2019. 6. 28. 금요일).
시편 19:7-8.
찬송 357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경기와 충청도의 경계지역에 있는 장호원은 복숭아로 유명한 곳입니다. 그러나 화가이면서 삽화가인 신 가영은 <귀농일기> 글에, 그곳의 6월을 이렇게도 그렸습니다. “6월이다. 매실이 익어가고 앵두가 붉게 물들고, 덜 익은 어설픈 살구 떨어지는 사이, 옥수수는 허리춤까지 자라고, 감자 꽃이 피며 오이가 매달리기 시작했다. 무섭게 자라는 잡풀들에 나비가 훨훨 날면, 양배추는 구멍이 나기 시작하고, 나무가 새로운 가지를 내 놓으면 개미가 들락거린다.” 그러면서 수멍이도 끈질기게 쫓아다니고 가끔 두더지가 다녀가는 때가 장호원의 6월이라고 글에 묘사하지요. 그런 화가의 귀에 몇 년 전부터 유난히 아름답게 들려오던 새소리도 있었습니다. 분명 꾀꼬리 소리는 아닌데 무슨 새 소린지 모르는, 너무나 아름답고 맑은 새 소리였습니다. 그래서 늘 궁금해 하고 답답해했는데, 어느 비 그친 다음 날 비로소 그 소리의 주인공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바로 후투티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었지요. 후투티라면 10년 전에 딱 한번 봤던 새, 그 후로 그 사실을 늘 자랑했던 새였습니다. 그런 새가 내내 바로 곁에 있었는데, 전혀 모르고 있었다니 어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 후투티, 우리들에게도 있지요. 오래 전에 딱 한번 왔다 갔을 뿐, 이제는 없다고 생각한 기회나 인연이나 시간들. 조금만 더 빨리 알아보려고 노력하고 좀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그들이 내내 바로 옆에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을 텐데. 오랜 시간 놓쳐온 좋은 기회와 아름다운 시간들이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후회스럽습니다. 하지만 후투티는 올해도 돌아와 숲속에서 맑고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놓친 기회와 그냥 흘려보낸 시간들이 여전히 바로 우리 곁에 있다고 노래하는 후투티의 6월, 이번엔 놓치지 않겠습니다. <KBS FM 1 가정음악 2019. 6. 17. 방송>
2. 오늘 본문에는 적어도 여섯 가지의 서로 다른 말씀들이 있습니다. “작은 일에 충실하라(10-12절)”,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13절)”, “하나님은 마음보를 보신다(14-15절)”, “율법과 하나님 나라(16-17절)” 그리고 “간음의 행위(18절)”이 그것들입니다. 이렇게 독립된 말씀들을 누가문서의 저자는 한 자리에 편집한 것입니다. 이럴 때 여섯 가지 말씀을 다 묵상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한 가지만 묵상하기에도 너무 힘들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는 두 번째 말씀을 묵상하고 싶어졌습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주제인데, 여기서는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뜻으로 읽혀집니다. 그러니까 삶의 최고의 가치를 재물이냐 하나님이냐 중 하나로 삼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 <깨끗한 부자>라는 책을 써서 주목을 받았던 김동호 목사님은 <행복한 부자>로 방향을 돌린 것 같습니다. 우리 시대에 돈이 많다는 것은 자랑할 이야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하물며 돈을 많이 가지고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은 더욱 아닌 것 같습니다. 마땅히 써야 할 곳에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가 자신의 전 재산 중 토지는 모두 가난한 농노들에게 무상으로 분배해 주었으나, 막대한 인세를 빈자들에게 나눠주려다 아내와 다투던 중, 어느 작은 열차 역에서 객사한 이야기를 생각해 본다면 말입니다. 그러니 돈에 깨끗하다거나 행복이라는 말을 덧붙여서는 안 되겠습니다.
십계명의 제1계명은 모든 계명과 율법의 시금석이 되는 말씀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야훼는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임에 비해서, 우상은 사람들이 만든 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그리고 올바르게 아는 것에서부터 바른 신앙은 시작된다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많은 우상을 만들곤 합니다. 건강이라는 우상에서부터 재물이라는 우상, 권력이라는 우상, 그리고 자식이라는 우상까지 만들어 둡니다. 다시 말하면 그런 것들이 자신을 지켜주고 보호해 준다고 믿는다는 말입니다. 대전 계룡산 초입에는 새로 세운 미륵상이 있습니다. 불가에서는 미륵을 인간 세상에 내려온 부처라고 생각하는데, 그 미륵상은 왼손가락에 약 상자를 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병자들과 그 가족들이 불공을 드리고 찾는 곳입니다. 모두가 상상 속에서 만든 우상입니다. 기독교도 예외는 아닙니다. 요즘 한 두 정치 목사의 출현으로 시끄러운데, 이런 위인들은 권력이나 물질을 쫓는 우상숭배자들에 불과합니다.
3. 아내는 졸업 55주년을 기념하는 홈커밍 데이에 참석한다고 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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