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620호(2019. 7. 2. 화요일).
시편 20:4-5.
찬송 4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나의 삶을, 당신은 당신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기대를 만족시켜주기 위해 이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니고, 당신도 나의 기대를 만족시켜주기 위해 이 세상에 살지 않습니다.” 프리츠 펄스(Fritz Perls), 그는 독일의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였습니다. 그는 심리학계에 중요한 치료법을 남겼는데, 그게 바로 <게슈탈트 치료법>입니다. 게슈탈트/Gestalt 는 독일어로 전체 형태 모습이라는 뜻입니다. 그 치료법은 한 사람의 심리는 지금 그 사람의 여기 현재의 모습을 전체적이고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심리 치료법입니다. 프리츠 펄스는 그 치료법을 사람들이 좀 더 이해하기 쉽도록, 게슈탈트 기도문으로 썼습니다. 그 기도문의 핵심 단어 중의 하나가 <기대>였습니다. 기대라는 단어도 다른 많은 단어들처럼 양면성을 가졌지요. 누군가가 내게 아무런 기대도 없다고 한다면, 날 포기하거나 관심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큰 기대를 받는 일 또한 행복하기는커녕, 너무 큰 부담에 오히려 무릎이 꺾여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기대는 내가 하고 이르는 건 당신이 해야 한다. 당신이 기대하니까 무조건 해내야 한다는 이상한 기대법칙은 쓰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오늘은 정신 의학자이면서 심리학자인 게슈탈트 기도문 중의 한 구절, “나는 나의 삶을, 당신은 당신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기대를 만족시켜주기 위해 이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니고, 당신도 나의 기대를 만족시켜주기 위해 이 세상에 살지 않습니다.” 그 한마디에 물들어 봅니다. <KBS FM 1 가정음악 2019. 6. 22. 방송>
2. “나병환자 열 사람(11-19절)”을 읽었습니다. 요즘은 한센씨 병으로 불리는데, 지금도 사람들은 혐오 질병이라고 해서 이런 분들을 만나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1960년대 초 제가 4년을 살았던 거창에도 한센씨 환우들이 닭과 돼지를 키우며 집단생활을 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어느 해 성탄절에 그곳으로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손가락 마디가 다 없어졌고 어떤 분은 코까지 없어졌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점심을 같이 먹는데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지만, 억지로 삼켰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사람들을 십 수 년 동안 목욕봉사를 한 분이 우리 묵상식구 중에 있습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참 존경스러운 분입니다. 지금 산티아고 가는 길에 나서서 힘든 걸음 중인 김필승 목사님 부부얘기입니다. 지금부터 2천 년 전, 이런 한센씨 병을 앓는 열 명의 병자들이 주님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습니다.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을 향해서 “사제들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셨는데, 그들이 다 나았음을 증명해 줄 선언을 제사장들이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제사장에게 가는 동안 깨끗해 진 것을 알았는데, 그 열 명중 단 한 사람만이 주님께 돌아와서 감사드렸습니다. 그는 사회적으로 무시당했던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구실을 한다고 큰소리치던 유대인 아홉 명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제가 자주 듣는 칭찬(?) 가운데 하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묵상을 배달한다는 성실성입니다. 사실 그 때문에 아내에게서는 여간 고초를 겪는 게 아닙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노트북 앞에 앉거나, 하루 서너 시간씩 방송 녹취를 한답시고, 자기 부탁은 물론 심지어 얼굴 보기도 힘들다는 푸념입니다. 그러나 일련의 묵상은 순전히 제가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말할 수 없는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일입니다. 그런데 저 역시 오늘 본문에서 주님의 심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묵상자료를 건네받는 입장에서는 1년에 한번쯤은 고맙다는 말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렇습니다. 참 무심한 사람들이다 라고 노여움이 솟을 때도 없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은총을 입었다면,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라고 말입니다. 그게 사람다운 모습이라고 말입니다. 자식들도 그렇습니다. 부모의 사랑과 헌신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그 당연했던 사람이 떠나게 되었을 때, 후회가 밀려올 것입니다. 시간이 드는 것도 아니고 더욱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라고 말한 마디 하면 될 일을. 우리는 감사에 인색하고 은총에 인색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 느낌을 더욱 더 잘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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