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686호(2019. 9. 6. 금요일).
시편 34:14-16.
찬송 20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일상의 사물들을 새롭게 돌아보는 사물에게 말 걸기. 오늘의 사물은 <풍향계>입니다. 지상에서 가장 오래 됐으면서 가장 간단한 기상 측정 기구는 바로 풍향계라고 합니다. 풍향계는 말 그대로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측정하는 기계지요. 베드민트의 셔틀콕처럼 앞이 넓고 뒤가 가는 모양이면, 어느 것이든 풍향계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풍향계 위에는 동양에서는 새 형상이, 서양에서는 닭의 형상이 세워져 있을 때가 많은데요. 중국의 갑골문에 등장하는 바람풍자는, 중국인들이 신성시하던 새 봉황 과 닮은 형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새 봉황을 바람의 신으로 풍향계 위에 보냈지요. 그러다 봉황이 새의 형상으로 바뀌면서, 중국과 아시아에서는 풍향계 위에 새 모양이 등장한 것이라고 합니다. 서양에서는 풍향계 위에 닭의 형상을 놓기 시작한 것은, 9세기쯤이었다고 하는데요. 중세 기독교 국가들에서 교회 첨탑위에 닭의 형상을 세우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였습니다. 기독교에서는 베드로가 아침 닭이 울 때,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정을 했다고 하지요. 그 점을 잊지 않고 거울삼자는 의미로, 교회 첨탑에 닭의 형상을 세우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풍향계에까지 이어졌다는 겁니다. 그런가하면 풍향과 관련해서 요즘에는 바람장미라는 것이 등장했는데요. 바람장미는 한 지점에서 일정기간동안 나타난 바람의 방향을 빈도수대로 표시해 놓은 풍향 방위 그래프를 말합니다. 그래프 모양이 꼭 장미꽃 같아서 바람장미라고 한다는데요. 오늘의 바람은 풍향 그래프에 어떤 바람장미를 그려 넣을까요?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 장미꽃이기를, 잔잔하게 흔들리는 풍향계이기를 바래 봅니다. <KBS FM 출발과 함께. 2010. 9. 7 방송>
2. “나단이 다윗을 꾸짖다(1-14절)”을 읽었습니다. 아무리 예언자라고 해도 왕을 아무 때나 찾아가는 것은 위험한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가능했던 것은 다윗 왕이 예언자를 하나님의 일꾼으로 존중한 때문일 것입니다. 세태를 주목하던 예언자 나단은 왕을 찾아가서 두 사람의 비유로 왕을 꾸짖었습니다. 많은 소와 양을 가진 한 부자에게 손님이 왔는데, 자신의 양이나 소를 잡기가 아까워 한 마리밖에 없는 그래서 마치 자식처럼 애지중지하는 가난한 자의 양을 빼앗아 손님 대접에 사용한 것입니다. 얘기를 듣던 왕은 화가 치솟아 소리칩니다. “인정머리 없는 놈에게 4배를 갚게 하여라.”고 말입니다. 율법을 적용한 것입니다(출 22:1). 그러나 나단은 더 큰 소리로 말합니다. “왕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리고 알아듣도록 풀어 말합니다. 왕에게 허락된 여인들은 셀 수 없이 많은데, 어찌하여 헷 사람 우리야의 하나 뿐인 아내를 빼앗아 아내를 삼았느냐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형벌을 말씀드립니다. 다윗 당대에 재난이 일어나, 왕의 비(妃)들이 백주에 강간을 당하는데 온 나라가 다 알도록 하겠다고 말입니다. 잘못에 대한 벌은 기정사실 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예언자의 준엄한 꾸짖음에 대한 왕의 태도입니다. “내가 야훼께 죄를 지었습니다.”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잘못을 시인하는 다윗이었습니다. 아무 힘도 없는 예언자 앞에 엎드려 회개하는 왕을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자 예언자는 하나님의 용서가 있을 것을 알려주며, 죽게 될 사람은 왕이 아니라 우리야의 아내가 낳게 될 어린 아이라고 했습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라는 추상같은 율법은, 살인은 당연히 살인으로 부메랑 되어 돌아오는 것을 다윗 왕 자신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여전히 어리석은 우리들만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묵상식구의 안부 글에 밥 딜런의 <바람만이 아는 대답/ Blowin’ the wind>을 흥얼거리는 중이라고 답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 사람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바람만이 아는 대답일까요? 전쟁의 가공할 비극을 수없이 겪었으면서도 전쟁놀이를 부추기는 사람들은 언제쯤 철이 들까요? 진정한 평화는 방법도 평화적이어야 하는 데 말입니다.
3. 태풍 링링이 북상중이라고 합니다. 주변에 피해없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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