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789(2019. 12. 18. 수요일).

시편 55:18-19a.

찬송 371.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영화 <봄여름 가을 겨울> 등으로 세계적으로 요명한 김기덕 감독. 좋아하다 못해 열광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지요. 영화가 나올 때마다 논란을 일으켰던 김기덕 감독이, 거의 폐인처럼 지낸다는 소식이 들려와서 영화 펜들을 놀라게 했었는데요. 하지만 곧 김기덕 감독 본인이 그 뉴스에 대한 해명 글을 발표했지요. 뉴스에서와는 달리 힘들었던 이들과도 이미 다 화해하고 잘 지내고 있다는 글이었습니다. 그 해명 글의 몇 구절은, 살아오고 살아가는 동안 비슷한 일을 겪었거나 겪기도 할 우리들에게 기억할만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요. “영화를 중단하고 제가 지방에 혼자 조용히 사는 것은, 여러 가지로 저 자신의 잘못된 삶을 돌아보고 다스리는 시간이며, 그 누구도 탓하거나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 그동안 있었던 배신 운운의 일을 뜻하지요. 그런 것 또한 사람의 인생에서 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기에, 다 이해하고 지나치게 영화로만 삶을 살아, 그동안 알지 못했던 제 본질을 깨달아가는 지금의 제 상황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글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심리학자인 마이클 메컬러프는 [복수의 심리학]에서, 제목과는 달리 오히려 용서와 화해를 강조합니다. 화해는 가해자가 문제가 됐던 태도를 바꿈으로써 일어나는 관계 회복의 것이고요. 용서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에 대한 나쁜 의지를 극복하고, 선한 의지를 회복하는 보다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감정의 회복이라고 말했습니다. 가해자는 뉘우치고 희생자는 용서해야 한다고요. 그러면서 용서의 종점은 화해라고 메컬러프는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용서와 화해가 이론만큼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지요. 메컬러프는 실험을 하기도 했는데요. 모르는 사람끼리의 용서와, 매일이거나 자주 만나는 얼굴을 대하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힘든지를 실험한 겁니다. 결과는 아는 사람 가까운 사람끼리의 화해나 용서가, 모르는 사람끼리의 그것보다 훨씬 힘이 들었지요. 감정이란 혼자 차분히 가라앉힐 시간을 갖지 못한 채, 해당 감정의 대상을 계속 보거나 만나거나 생각하게 되면, 더 쉽게 상승되고 자극되고 쌓인다고 합니다. 당장에 들끓는 상황에서 한 발 벗어나, 자신을 상처주고 힘들게 한 대상을 돌아보는 것이야말로, 용서와 화해를 위한 첫걸음이 아닐까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01223일 방송>

 

2. “충성스러운 종과 불충한 종(45-51)”을 읽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의미도 모르면서 즐겨 사용하는 용어들이 많습니다. 은총이나 회개라는 용어도 그렇지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종이라는 말도 그런 잘못 사용하는 용어중의 하나입니다. 인류사에는 부끄러운 역사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의 대표적인 것이 노예제도를 들 수 있습니다. 요즘은 사극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물로 노비계층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60여년 전만해도 머슴이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저의 큰 집에는 두 명의 머슴이 있었습니다. 그 머슴들은 이른 아침이 되면 주인댁 침실 앞마당에 와서 주인에게 아침 인사를 드리면서 그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하명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녁이면 하루 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보고해야 했습니다. 자신의 의지나 생각대로 살아서는 안 되는 사람이 종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종들은 주인에 의해서 팔려갈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목숨을 빼앗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시절에 주님은 두 종류의 종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로 언급하신 종은 주인의 뜻을 잘 따르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주인의 뜻이란 또 다른 종들을 잘 다스리고 제 때에 양식을 잘 공급하는 일이었습니다. 요즘 국민의 공복이라고 불리는 공직자들이 해야 할 가장 큰 직무가 나라와 백성들을 평안하고 행복하도록 필요한 모든 일을 하는 일입니다. 이런 종들은 그 자신이 행복할 뿐 아니라, 주인을 만날 때 칭찬을 듣게 되고 더 큰 역할도 맡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둘째로 언급하신 종의 경우는 주인이 더디올 것이라 생각하고, 주인의 뜻과는 정반대로 다른 종들을 힘들게 하고, 흥청망청 유흥에 빠져 지내다가, 주인에게 그 꼴을 들켜 쫓겨나 후회하는 삶을 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종이란 우리들 모든 인생을 두고 하신 말씀으로, 저마다의 역할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경우를 일깨우는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종종 어떻게 사는 게 지혜로운 삶이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는 것과, 나름 깨달은 소명에 충실한 삶이라 하겠습니다. 주의 또 주의할 것은 남을 따라 살아가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자신의 삶이 아닌 때문에 헛되게 사는 일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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