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104(2020. 10. 28 수요일).

시편 시 109:16-20.

찬송 30.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내에게 바치는 편지> 가을이 가기 전에, 어딘가에서 한번쯤 듣게 되는 노래가 있지. “가을엔 편지를 쓰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돼 받아 주세요.” 이렇게 시작되는 노래. 시에다 노래를 입혀서 인지, 들을 때마다 노랫말을 곱씹게 되는, 가을의 명곡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드오. 그래서 가을이 가기 전 시월이 가기 전에, 당신에게 붉은 단풍잎을 닮은 그런 편지 한 장 써보고 싶었다오. 아니 사실 이렇게 기특한 생각을 자발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소. 고백하자면 지난 주말에 우연히 본 당신의 뒷모습이 자꾸 밟혀서, 넌지시 속엣 말을 해 보고 싶어졌다고 할까. 아침이면 늘 그렇듯, 지난 주말 아침에도 당신은 가장 먼저 일어나 있었지. 그리고 내가 두 번째. 그런데 다른 때 같으면 부엌쯤에서 물소리도 들리고 사뿐 사뿐 당신 발소리도 들렸을 텐데, 집안이 너무나 조용하겠지. 그래서 둘러보니 당신은 베란다 앞에 의자를 밀어다 놓고, 창 너머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던 거야. 얼마나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지, 내가 일어나 당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더군. 그런데 말이요. 움직임도 없이 그렇게 앉아 있는 당신 모습이, 내겐 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오. 몹시 외로운 모습이라서였소. 나라는 남자 곁에서 20년 가까이를 살았는데, 저렇게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앉아 있다니, 내가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은 같기도 했지. 그날 아침 당신이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소. 그냥 내 바람은 흘러간 당신의 첫 사랑, 고교 시절 영어 선생님이라거나, 짝 사랑의 대상이었던 오빠 친구, 이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면 낫겠다 싶을 뿐이오. 내 인생이 이게 뭔가? 이런 생각을 했다면, 그건 나와 함께 산 인생 전체를 허무해 하는 것이 아니겠소. 만약 그랬다면 내 가슴이 너무 시리거든. 나야 와인보다는 소주파지만 이번 주말엔, 당신과 와인 잔을 부딪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시간 좀 내 주오<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1030일 방송>a.

 

2. “빈 무덤(1-10)”을 읽었습니다. 안식일 후 첫날(일요일) 이른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가 주님의 무덤을 방문했는데, 이는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시신에 향유를 뿌리기 위함이었습니다(16:1, 24:1).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한 전통이 있는데, 바로 삼우제(三虞祭)로 장례를 치른 3일 후 행하는 제사가 그것입니다. 참고로 초우는 장례를 치른 날, 재우는 지방마다 다르고, 삼우는 3일째 행하는 제사입니다. 유대인들은 오래 된 무덤은 돌이나 땅에 굴을 파서 시신을 안장하는데, 굴 입구에 큰 바위로 막아두고 필요할 때마다 돌을 굴려서 무덤을 관리하곤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막달라 마리아가 향유를 들고 무덤을 찾아왔을 때 이미 무덤 입구의 돌이 굴러져 있었고, 주님을 찾아보았으나 주님은 그 무덤 안에 없었다는 것이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베드로와 다른 두 제자가 이를 확인했습니다.

   흔히 예수님의 부활을 토론할 때나 부활 신앙을 증거할 때, 이 빈 무덤을 그 중요한 근거로 얘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토론이나 주장은 부활 신앙을 뒷받침하는 확실한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얼마든지 반대 주장이 가능한 때문입니다. 그래서 빈 무덤은 생명의 영원함을 지지하기에는 너무도 허약한 이론이라는 뜻입니다. 오히려 빈 무덤은 하나님께서 생명을 취급하시는 하나의 방법에 불과하다는 것을 눈뜰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흑암과 혼돈에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1:1-31). 마른 뼈들에게서 거대한 이스라엘 군대를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셨습니다(37:1-14). 그러니까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에로 우리의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경험이나 현실 속에서가 아니라, 생명에 관한 하나님의 근본적인 의도와 섭리에로 우리의 관심을 돌려야 옳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직면하는 그 어떤 절망과 슬픔 앞에서도 생명의 근원이 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의지하는 신앙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빈 무덤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생명은 영원성을 가지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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