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128호(2020. 11. 21. 토요일).
시편 시 116:8-11.
찬송 7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정섭에게> 잘 받았노라고, 잘 쓰겠노라고 문자도 보내더니, 또 이렇게 편지까지 보냈구나. 사실 누나는 너랑 전화 통화 한 다음, 혼자 잠깐 쇼를 했어. 안 그래도 힘든 사람에게, 왜 그렇게 길게도 잔소리를 했나? 그런 일 누나가 아니라, 집 사람에게도 말하기 힘들었을 텐데. 왜 버럭 화부터 냈나? 내 자신을 향해서 끌끌 혀도 차고, 낮도 붉히곤 그랬지. 언젠가 읽은 책에 이런 내용이 있더라. 가난하거나 성공하지 못한 채 산다는 것은 그리 나쁘지는 않지만, 주기적으로 주위 사람들로부터 여러 충고며 조언들을 귀찮아하지 않고 들어주는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던가. 쉽게 말하자면 사람들은 자기보다 조금 더 가난하거나 자기보다 더 변변찮아 보이는 사람들에게 함부로 충고하고 조언하기를 즐긴다는 말이겠지. 그 글을 읽었을 때, 아이고 나는 절대로 그러지 말아야지, 작정했었는데. 그만 그세 까맣게 잊고선 내 동생에게 있는 대로, 잔소리며 충고를 해댔구나 싶더라. 그런데 아마 형제지간이라서 일까? 넌 그런 내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정성껏 편지를 보내주는 구나. 감사할 일이야. 그런데 그런 너의 사정을 헤아린 건, 내가 맏이라 서도 또 나만의 특별 감지력이 있어서도 아니야. 요즘 중소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고, 그래서 월급 지급이 미뤄지거나 월급 액수도 줄었다는 이야기, 나도 읽고 들어서 알고 있으니까. 이렇게 힘들 때, 잠깐 잠깐 서로 기대면서 이 시기를 이겨내다 보면, 흔들리는 가운데서도 스스로 균형을 잡는 법, 견디는 법을 터득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다보면 봄날도 올 테고 말이야. 누나의 다른 잔소리는 다 잊어줘. 하지만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해도 되는 사람, 가족이 있다는 것은 잊지 말아주길 바래.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년 11월 20일 방송> b.
2. “야훼의 특사가 오신다(2:17-3:5)”과 “하나님을 속이는 것들(3:6-12)” 그리고 “판가름할 날이 온다(13-24절)”을 읽었습니다. 공동번역의 장과 절로 본문을 안내드렸는데, 개역 판이나 개정판으로는 2:17-3:6, 3:7-12, 13-18, 4:1-6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둘째 단락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요즘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까지 핫한 주제로 십일조가 등장했습니다. 십일조 때문에 구약과 신약을 분리해야 옳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십일조는 구약의 율법으로 무시해도 좋다는 그런 논리입니다. 최초의 이단자 말시온(85-165년)은 구약 무용론을 주장했는데, 그리스도가 율법의 마침이라는(롬 10:4) 바울의 말을 따른 것이라 합니다. 이런 논리로 그리스도가 오신 이상 더 이상 구약의 율법에 구속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지엽적인 자구 해석은 성경을 얼마나 왜곡하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구약과 신약의 관계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그 근거를 잃어버리게 되고 엉망진창으로 뒤범벅이 될 것입니다. 큰 그림으로 생각할 때, 구약은 약속이라면 신약은 성취라는 구도에서 관계 지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신득의(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신학)을 알 수가 없습니다. 이사야 등의 메시아 예언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화육 신앙은 근거를 잃을 수 밖입니다.
십일조는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진 유대인의 신앙이면서 동시에 모든 크리스천의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주관하시는데, 우리들 인간은 그 하나님의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들을 빌려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긍정해야 합니다. 그 결과 오랜 인간의 역사와 전통에서처럼 하나님께 감사하는 뜻으로 10의 1을 드린다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아브라함의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것이 첫 기록이나(창 14:18-20), 선사시대에도 십일조는 존재했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그 후로 야곱이 십일조를 약속하고(창 28:22), 모세는 이를 율법화했습니다(레 27:30-33). 우리는 십일조의 정신을 계승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신구약 시대는 물론 현대에도 하나님의 섭리사상을 믿는 일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십일조를 속이는 풍조에 대해서 말라기는 엄중하게 책망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십일조를 속이는 자들을 향해서 “천벌을 받을 것들아”라고 비난하겠습니까? 그리고 십일조를 바르게 사용할 것도 주문합니다. 십일조의 오용은 심각한 문제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는 그보다 더 중요한 관심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십일조의 정신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일이 강조되어야 할 것입니다. 민간 신앙에서도 제천제(祭天祭)를 드려 하늘의 은총에 감사하고 있는 것을 주목해 볼 이유이기도 합니다.
3. 어제는 아내와 가을 김장을 하였습니다. 배추는 9포기, 무는 농사지은 것으로 했는데, 몸살할 것 같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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