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125(2020. 11. 18. 수요일).

시편 시 115:16-18.

찬송 49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김 바리에게> 맨 처음 네가 이제부터 날 감바리라고 불러줘.” 했을 때, 눈치가 느린 난 무슨 말인지 얼른 알아차리지 못했었지. 김바리 스타일의 줄임말이라고 알려줘서야, 비로소 겨우 알아들었어. 넌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 이미 지금의 계획들을 이미 다 세워놓았다고 했었지. 몇 년 후에 대한 계획이 사람을 얼마나 변화시키는지 나는 너를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되었어. 네가 목표액을 달성해 드디어 작은 너의 커피가게를 열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볼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단다. 감바리가 처음 직접 커피콩을 갈아서 손수 내려준 커피의 맛, 정말 부드러우면서도 풍미가 진하더라. 어쩐 일인지 내기 직접 내려 마시면 맛이 좀 탁하고 씁쓸하던데. 네가 그 이유를 짚어주기 전까지는 난 그 이유조차 커피를 내릴 때, 가장 맛있을 만큼을 내린 다음에, 맨 나중에 내려지는 건 아낌없이 그냥 버려야 한다는 걸 몰랐던 거야. 왜 내가 내린 커피는 맛이 없을까 고민하는 나에게, 넌 그 중요한 이야기를 아주 싱겁게 짚어 주었지. 그렇게 넌 가게 오는 사람들이 물으면, 누구에게나 커피내리는 요령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더구나. 그제야 난 네가 진짜 감바리라는 걸 실감할 수 있겠더라. 넌 네가 좋아하는 커피를 이용해서 돈을 벌고 싶은 마음보다는, 맛있는 커피를 여러 사람들과 나누어 마시고 싶은 마음이 먼저였던 거지. 감바리. 이제 문을 연지 얼마 안 된 너의 작은 가게가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늘 북적거리길 바랄게. 커피콩을 그 콩의 성질에 따라 각각 다르게 볶는 법을 연구하느라 바쁘다니, 너의 집 커피는 날마다 더 깊어지겠구나. 가장 맛있을 만큼만 내리는 너의 커피처럼, 너도 인생의 가장 맛있는 부분만을 적절히 잘 즐기길 바래.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1118일 방송> a.

 

2. “하박국이 구원을 호소하다(1-19)”을 읽었습니다. 모든 언어는 좁은 의미와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현실적 의미와 항구적 의미로도 말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거창고 이사장이신 전성은 선생께서 한국의 강단에서 외쳐지는 천국이란 없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거북하게 들으실 분들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성경 원어에는 천국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는 말씀은 많은 오해를 불러올 것 같습니다. 오히려 스올이라는 말이 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어인데 헬라어로는 하데스에 해당되는 말로, 지옥으로 번역되기도 하고, 무덤으로도 그리고 사망과 부활의 중간지역으로도 해석되기도 하는 낱말입니다. 넓은 의미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으로 이해하면 무난할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4953절과 같이,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주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선생은 성공한 사람 출세한 사람이나 가는 곳으로 말하니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박국의 기도, 만가(輓歌)조로 읊으라고 단서를 달고 있습니다. 상여를 메고 가는 소리를 내라는 말입니다. 요즘은 듣기 힘든 만가이지만, 구슬픈 가락 못지않게 인생 희로애락이 모두 담긴 철학책을 읽는 느낌입니다.

   하박국의 만가는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실 것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야훼께서 데만(남쪽 땅)바란 (광야)에서 오시는데, 역신과 열병이 뒤따른다고 노래합니다. 그런데 그 행렬이 아득하게 보여, 절망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하박국은 자신을 물귀신 또는 바다 귀신으로 비유하는데, 정직하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남을 끌어들이는 변명의 명수들인 것을 시인하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노여움은 모든 기초를 송두리째 뽑아버리고, 마침내 무화과는 열리지 않고, 포도는 달리지 않으며, 밭곡식은 나지 않고, 양떼는 간 곳 없고, 목장에는 소떼가 보이지 않는다고 슬퍼합니다. 그러나 이 때 하박국은 반전의 노래를 부릅니다.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기뻐 뛸 것이라고 말입니다. “야훼는 나의 힘이 되어 주시고, 사슴처럼 날랜 다리를 주시고, 산등성이를 마구 치닫게 하신다고 말입니다. 참된 희망이란 완전한 절망 속에서 가질 수 있는 은총임을 깨닫게 해 줍니다. 참된 기쁨은 가장 깊은 고통과 시련 속에서 찾아오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것은 야훼 하나님이 생명의 주인이시고, 역사의 주인이심을 발견하는 순간에 찾아오는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십자가를 통과해야만 제 빛을 내는 때문일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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