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277(2021. 4. 19. 월요일).

시편 시 146:5-7.

찬송 387.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나 오닐을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사랑을 찾아 헤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세상에 단 한 사람에게만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20세기 최고의 영화인 중의 한 사람인 찰리 채플린의 사랑어록입니다. 사랑이 세상의 단 한 사람에게만 느낄 수 있다는 말에서 울림이 큰데요. 파란 만장했던 그의 인생을 살면서 어느 순간에 , 이 사람이 정말 나의 반쪽이구나.” 라는 생각을 한 모양입니다. 아마 벼락처럼 떠 오른 말일 것 같은데요. 채플린은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의 이혼과 어머니의 정신 질환으로 고아원을 전전하면서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유년시절의 영향이 그 사람 인생의 절반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지요. 그래서인지 그의 영화 속 웃음에는 왠지 쓸쓸함이 묻어 있습니다. 그런 걸 페이소스라고 하나요? 아역 배우로 극단에서 활동하다가, 1913년 뉴욕 순회공연 중에 영화제작자 세네게에게 발탁돼 영화인생을 시작한 채플린. 그를 떠 올리면 자연스럽게 그의 코 수염 또 지팡이가 같이 떠오르지요. 또 걸음걸이는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요. 그의 유머는 그의 시대를 같이 살았던 사람들의 아픔과 또 고통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마치 진흙탕 물에서 피어오른 연꽃처럼 말입니다. 그의 영화도 결국은 인간의 사랑을 갈구하는 한 사내의 몸부림이 아닐까 싶은데요. 그가 오늘 태어났네요. <KBS 클래식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7416일 방송>

 

2. “하나님 앞에서의 확신(19-24)”성령과 악령(4:1-6)”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째 단락입니다. 삶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젊은 날에는 가을바람이 스산히 불 때 그랬었고, 가까운 지인이 곁을 떠나갈 때 그랬습니다. 열심히 달린다고 했는데, 과연 제대로 달리는 것인가 회의가 들 때도 있고, 해마다 피었다 지는 라일락꽃을 바라볼 때도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제가 목회 햇병아리 생활을 할 때,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신우회 학생들이 제게 <확신>이라는 주제를 주면서 3일간 신앙 강좌를 인도했던 추억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때도 저는 신앙은 흔들리는 것이라고 운을 뗐습니다. 생각이건 생명이건 흔들리지 않는 것은 없다 전제했습니다. 흔들리는 것은 신앙이나 신념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들 인간이 흔들리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반석이신 하나님의 말씀은 흔들림 없이 굳건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래도 흔들리거들랑 파스칼의 노름(Pascal’s Gambling)을 떠올리라 억지를 부렸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흔들리는 세상에 살고 있고 우리 스스로 역시 흔들리는 갈대나 다름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말이나 혀끝으로가 아니라 삶으로 진실하게 사랑하면,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되고, 하나님 앞에 있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신앙이든 신념이든 그것을 위해서 전력투구하던 시절을 되돌아 봤으면 좋겠습니다. 목숨을 내놓고 그것들에 시간과 정력을 쏟아 붓던 때를 말입니다. 요한서신의 기자는 적어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을 때, 하나님 앞에서 떳떳할 뿐 아니라, 구하는 모든 것을 다 받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두 주일 전 손자를 훈련소 입구에 내려놓기 직전에 자동차 안에서 마지막 권고를 했습니다. 훈련을 받을 때나 전우들과 공동생활을 할 때, 허투루 대충대충 시간 때우려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고 말입니다. 특등 사수가 되고 모범 병사로 표창 상신 후보가 되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인생 전체를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모든 흔들림을 멈추게 하는 확신에 참 삶이 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를 진실한 사랑하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형태든 종류든 진실한 사랑은 우리의 삶의 내용을 단단하게 지탱해 주는 확신의 삶임에 분명하다고 말입니다. 이를 요약하는 좋은 단어가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까르페디엠(Carpe Diem)이란 말은 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의 호라티우스 플라쿠스의 시에 나오는 말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에 의해서 유명세를 얻게 된 말입니다. “현재에 충실하라!” 혹은 현재를 잡아라!”는 뜻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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