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439호(2021. 9. 28. 화요일).
시편 시 33:1-3.
찬송 44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석담 선생은 그 종이와 곡식 위에 서예 도구인 필낭을 벗어서 내려놓으라 하고는, 그 위에 불을 붙여버립니다. “아침에 붓을 쥐기 시작해 저녁에 자기 솜씨를 자랑하는 그런 보잘것없는 환쟁이를, 나는 제자로 기른 적이 없다.” 고죽은 스승의 용서를 받는 데만 꼬박 2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석담 선생은 손수 이런 글을 써서 그에게 주지요. “글을 씀에 있어서 그 기상은 금시조가 푸른 바다를 쪼개고, 용을 잡아 올리듯 하고, 그 투철함은 항상 이 바닥으로부터 냇물을 가르고, 내를 건너듯 하라.” 그 후 고죽은 치열한 애증의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스승에 대한 존경과 저주를 넘나들었고, 동경과 불안을 넘나들었지요. 석담 선생은 제자의 성취를 기뻐하는 법이 없었고, 다른 사람들이 고죽의 솜씨를 감탄하면, “이제 겨우 흉내를 낼 수 있을 뿐이오.” 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석담은 고죽에게 “만일 드넓은 정신의 경지가 곁들여 있지 않으면, 다만 검은 것은 먹이요, 흰 것은 종이일 뿐이다, 고 라고 하면서 학문은 도에 이르는 길이다. 그런데 너는 오직 붓 끝과 손목만 연마하여 시늉만 하고 있다.” 라고 냉엄하게 말했지요. 그 후 석담 그의 집을 고죽은 그의 집을 또 한 번 떠납니다. 그랬다가 다시 돌아온 날은 이미 스승이 저 세상으로 떠난 뒤였지요. 30년 후, 다 이뤘지만 다 잃은, 인생의 회의 속에서 스승에 대한 그리움만 남은 고죽은 작품들을 모두 장독대 옆 화단으로 가져가라고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나는 저것들로 일평생 나를 속이고 세상 사람들을 속여 왔다. 스스로 값진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당연한 듯 세상 사람들의 감탄과 존경을 받아들였다. 일생을 담아 그려온 작품들이 훨훨 불타오를 때, 그 때서야 고죽은 볼 수 있었지요. 그 불길 속에서 홀연히 솟아오르는 한 마리의 거대한 금시조를. 찬란한 금빛 날개와 그 힘찬 비상을.
그 무엇을 이루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라는 말, 예술에서만 통하는 진리는 아니겠지요. 마음은 얼굴에 투영되고, 몸에 반사되고 그가 하는 일에 스며든다고 합니다. 내 마음은 지금 내 손끝을 통해 내가 하는 일을 통해, 어떤 빛을 세상에 던디고 있는지 물음표를 찍어 보네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07년 9월 7일 방송> b.
2. “능력과 지혜이신 그리스도(18-31절)”을 읽었습니다. 제가 사는 아산에는 곡교천(曲橋川)이 흐르고 있는데, 천안 광덕산에서 발원하여 삽교천과 합류, 아산만에 이르는 총 84.6km의 금강권역에서는 유명한 강입니다. 그런데 아산에 이르러서는 아산 제1관광명소가 된 은행나무 길 옆을 지나가는데, 충무교에서 현충사 입구까지 2.2km에는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저는 이곳 곡교천의 유래를 조사해 보았는데, 옛날에 이곳에 섶다리가 놓였는데 똑 바르지 않고 이리저리 굽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분다리>로 부르다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곡교천>으로 기록된 것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굽은 다리를 건너곤 했는데, 지금은 반듯한 다리를 건너게 되었다는 말을 하려고 고사(古事)를 뒤적인 것입니다. 지금은 반듯한 현대식 다리가 놓여있지만, 얼마 전 옛날에는 굽은 섶다리였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곡교천을 건너는 사람들은 지금 눈에 보이는 것처럼 곧은 다리가 아니라, 굽은 다리의 역사를 가졌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고 말입니다. 지혜라는 것은 별다른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삶을 살아가는 기술이라고 말입니다.
본문에서는 사람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 비교 점은 십자가입니다. 당연히 죄의 결과로써 십자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죄는 죽음을 가져온다는 지혜, 죄는 반드시 치명적인 수치와 모멸과 고통을 몰고 온다는 지혜를 깨우쳐줍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십자가 없는 평화와 영광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십자가를 감추고 살아가는 것이 삶의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에게 십자가는 감출 수 없는 아픈 손가락입니다. 그런데 그 아픈 손가락을 밖으로 들어내려고 힘쓰십니다. 오히려 그 십자가를 은근히 자랑하기까지 하십니다. 까닭은 바로 그 십자가에 하나님의 가장 진한 사랑이 녹아 있기 때문이니까 말입니다. 예나 제나 사람들은 십자가를 감출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스스로 그 십자가를 밝히는 우를 범하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십자가를 온 세상에 공개해 버린 것입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 세상 죄를 뒤집어쓰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사랑하셨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녹아 있다고 말합니다. 십자가보다 더 큰 사랑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까지 말합니다. 그러니 그 지혜를 깨닫기를 소원해야 하겠고, 깨닫지 못한다면 믿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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