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735호(2022. 7. 21. 목요일).
시편 시 88:11-13.
찬송 19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이란,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좋은 표현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뭐가 좋은가? 라는 물음에 마땅히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 사람은 분명히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고 하는 환상적인 착각이 사랑이다. 보고 있으면서도 또 보고 싶은 것이 사랑이다.” 사랑에 대한 나름대로의 정의가 유행처럼 번지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정의 정말 헤아릴 수많이 있지요. 이은상 시 홍난파 곡의 <사랑>은 사랑의 참 의미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는 노래입니다. 진실한 사랑은 끝까지 다 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요. 나무가 타서 재가 되고, 그 재까지 마저 타 버리도록 영원한 사랑을 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홍난파는 수많은 가곡을 남겼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가장 선율 면에서 아름다운 노래가 바로 이 곡이 아닐까 묻고 있는 평론가도 있습니다.
‘탈대로 다 타시오. 타다 말진 부디 마소, 타고 다시타서 재 될 법은 하거니와, 타나가 남은 동간은 쓸 곳이 없소이다. 반 타고 꺼질진대, 아예 타지 말으시오. 차라리 아니타고 생나무로 있으시오. 탈진댄 재 그것조차 마저 탐이 옳소이다.’
이 시만큼 많은 논란이 된 가곡의 시도 없을 만큼 수없이 많은 다른 가사가 또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멜로디라던가 연주자의 발음에 맞추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실수였는지, 부르는 곡마다 조금씩 다른 가사가 표기되어 있는 경우가 참 많이 있습니다. 철저한 사랑의 교훈이 부드러운 선율에 잘 실려 있는 이 아름다운 곡이, 바른 표기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무척이나 아쉬운 점이기도 하고요. 원시가 주는 사랑의 참 뜻이 선율 속에 간결하게 높이 평가되고 있는 그런 곡이지요.”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년 7월 18일 방송>
2.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화해(1-11절)”을 읽었습니다. 기독교회가 말하는 구원은 타 종교와 비교할 때 많이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 종교가 도덕적인 잘못을 죄로 여기는데 반해서 기독교회의 죄란 하나님과의 불화(不和/dissension)에서 시작된다고 여기는 것이 가장 뚜렷한 차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의 불화는 거기에서 머물지 않고, 자기 자신과 불화하게 되고, 이웃과 불화하게 되고, 자연과 불화하도록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과의 부화는 총체적인 불화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문자적으로 불화는 부조화(不調和)를 의미하는데, 이 부조화는 모든 관계를 깨트려버리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데에 심각성이 있다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불화 혹은 부조화가 모든 죄의 근원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의 구원을 하나님과의 부조화에서 조화로 관계로 회복되는 것이라 가르치는데, 그런 관계 회복은 하나님과 인간을 가로막고 있는 죄의 담을 허물지 않고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며, 이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엄청난 임무를 수행하셨다고 말입니다(엡 2:13-18). 이런 하나님의 구원 섭리를 믿는 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믿음이라고 말입니다. 인간이 자기 힘으로 죄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생각하는 소위 자력종교가 기독교 이외의 종교들의 특징인데 반해서, 기독교는 죄의 수렁에서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이 바로 구세주 메시아 신앙입니다.
요즘 유튜브를 보면 최근 몇 년간의 한류 열풍으로 우리가 사는 우리나라가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며, 버킷리스트(bucket list) 1순위에 한국 방문을 꼽는 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같은 우리나라 하늘 아래에서는 꽃다운 젊은이들의 자살 소식은 멈추지를 않습니다. 삶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는 말입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지만, 그 중의 대표적인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과의 불화를 의미합니다. 자신을 신뢰할 수 없고, 자신을 기대할 수 없으며, 자신을 미워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이웃과 불화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무엇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고, 자기 주변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 역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씀합니다.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과의 불화가 이 모든 문제들을 만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성적으로 문제를 진단할 수 있습니다. 문제 자체를 분석할 수 있고,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모든 문제의 뿌리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불화하고 있다는 점에 눈을 떠야 합니다. 사도는 이런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회복을 위해서,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짊어지셨다고 말씀합니다(요 3:16).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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