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858(2022. 11. 21. 월요일).

시편 시 107:8-9.

찬송 299.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가까이서 벗하며 왕래할 수 있다면, 서로에게 큰 위안이 되겠지요. 교사이자 문화운동가였던 시인 이은상과 작곡가 박태준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마산 창신 학교에서 함께 교단에 섰던 둘은 동료이자 뜻을 가까이 하는 동지로 무척 가까웠지요. 바닷가를 산책하며 서로의 포부를 이야기하던 중에 박태준은 갑자기 떠오른 멜로디 하나를 흥얼거립니다. 며칠 뒤 그 악상이 오선지로 옮겨졌고, 그 곡을 들은 이은상이 봄여름 가을 겨울을 상징하는 우정에 대한 시를 붙여 <사우>라는 제목을 달지요. 그 곡이 바로 <동무 생각>입니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 언덕과 같은 내 마음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소리 없이 오는 눈발 사이로 밤의 장안에서 가등 빛날 때, 나는 높이 성공 쳐다보면서,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밤의 장안과 같은 내 마음에 가등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 빛날 때에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이곡은 1922년 이은상의 나이 19, 박태준 22의 나이에 완성된 곳입니다. 재기 넘치던 시절 3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정을 쌓았던 시인과 작곡가가 의기투합해 만들어낸 성과물이지요. 우리 가곡이 만들어진 초기의 작품이라서, 찬송가적인 성격이 묻어나기도 합니다. 원래 제목을 사우였습니다만, 훗날 한자어 제목을 쉽게 풀어쓰자는 의미에서 지금의 동무생각으로 바뀌었지요. 작곡이 되자마자 마산을 중심으로 전국으로 전해져서, 지금까지도 다양한 연령층에서 자주 애창되고 있는 곡입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1121일 방송>

 

2. “어린이를 축복하신 예수(15-17)”, “부자청년-낙타와 바늘귀(18-27)” 그리고 여러 갑절의 상(28-30)”을 읽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세 가지 일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물론 서로 간에 전혀 관련성이 없는 내용들입니다. 이럴 경우 우리는 누가복음서 기자의 편집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입니다. 오늘 묵상은 첫째 단락인 어린이를 축복하신 예수라는 일화입니다. 유명한 신약학자 예레미아스는 이 일화의 배경은 어느 속죄의 날 저녁이라고 전제합니다. 속죄의 날에는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들을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데리고 와서 축복의 기도를 받는 관습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본문의 내용을 보면 어떤 연유에서건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손을 얹고 축복해 주시기를 청할 때, 제자들이 그 부모들을 나무랐다고 하는 데서 얘기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속죄의 날에 전해 내려오는 관습과는 반대되는 상황이 벌어진 셈이라 하겠습니다. 제자들이 무지몽매한 사람들이 아니라면, 속죄의 날 전통과 연결 짓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라 하겠습니다. 오히려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관습, 여인들이나 어린아이에 대해 무시하거나 하대(下待)하는 전통과 연결 짓는 것이 더 타당하다 하겠습니다. 여인이나 어린 아이는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는 무시당했는데, 출애굽 인원을 계수할 때 유아를 제외한 장정의 수만 60만 명가량이라고 했고(12:37), 애굽에서 나온 둘째 해에 인구조사를 했을 때는, 20세 이상의 남자만으로 60만 삼천 오백오십 명이라고 했습니다(1:46). 일반적으로 유대사회에서는 여인이나 아이는 가족의 수나 공동체의 수에 끼워주지 않았던 이런 배경에서 어린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온 것이 문제시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어린 아이들이 당신께 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명하실 뿐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천국 시민의 모델이 된다는 파격적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어린 아이들의 순진성을 부각시키고 있는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그러니까 천국 시민들의 특징 중 하나는 순수함과 진실함을 꼽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1995년 겨울방학을 이용해서 미국 세인트폴의 루터신학대학원에서 3개월간 예배학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예배학교수의 안내로 매 주일 주변 교회들을 찾아다니며 예배 현장을 투어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규모가 있는 교회들은 어린이를 위한 짧은 설교를 하고 있었는데, 어린아이들도 자신들의 설교를 들을 권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자리에 대기하고 있던 아이들은 목사님이 초청하자 제단 위로 뛰어 올라갔고, 목사님은 그들 한 복판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들 눈높이에 맞춰 설교하는 것이었습니다. 귀국 후 저도 그대로 따라했는데, 은퇴할 때까지 20년을 어린이 설교를 포함시켰던 것입니다. 당시 협동목사였던 독일인 목사님은 어린이 설교를 듣는 것이 가장 즐거웠다 술회하기도 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설교는 성인 교인들 역시 자신들이 듣게 될 설교의 요지를 더 분명히 확인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도 중요한 예배자들인 때문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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