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856(2022. 11. 19. 토요일).

시편 시 107:1-3.

찬송 48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떠나가는 배>, <명태>의 작곡가 변 훈, 그는 <명태>를 발표할 당시만 해도 음악계에서는 유별난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정치학을 전공해서 외교관으로 미래가 보장된 사람이 음악을 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고국을 떠나서 오랫동안 외국 생활을 해야 했던 그에게, 음악에 대한 열정은 큰 위로가 됩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초혼> 역시 변 훈이 외교관으로 활동하면서 작곡한 작품들 중 하나입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 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켜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작곡가 변 훈은 정치 외교학과를 전공했습니다. 22살의 나이에 첫 작품 <금잔디>를 발표하고, 지휘자 정종길과 바리톤 최봉진에게 4년 동안 음악을 사사했지요. 하지만 한국 전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 계속되자 음악에 대한 마음을 뒤로 하게 됩니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그도 떠나가는 배, 바다의 소곡을 발표한 이후, 외교관으로 활동을 하게 되면서 음악과는 조금 멀어지게 되었지요. 하지만 그 20여 년간의 공백을 넘어 다시 발표한 곡이 바로 초혼입니다. 1979년 스페인에서 플라맹고 공연을 보다가 불현듯 이 곡의 악상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1119일 방송>

 

2. “바리새파 사람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9-14)”을 읽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저 역시도 기도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 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받으실 하나님의 입장이나, 기도를 드리는 인간의 입장을 비교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기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 한다면, 반드시 양쪽 입장을 고려해 봐야하는데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인간은 무엇이나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어리석은 존재임에 분명합니다. 서로를 고려한다고 하면 훨씬 더 괜찮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살핀다면 오늘 본문은 인간의 입장만을 고려한 기도의 문제를 지적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바리새파 사람처럼 기도하는 사람들이나, 세리처럼 기도하는 사람들을 예로 들으셨는데, 결론은 하나님의 입장으로 판정을 내리신 것입니다. 바리새파 사람은 기도라는 도구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제 자랑만 싫도록 늘어놓은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낯부끄러운 줄 모르는 것만 빼놓으면 그의 신앙생활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가하면 세리의 기도는 단 한 마디만 하고 오랜 침묵을 가진 기도였지만, 그리 흔한 기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길고 내용까지 다양한 바리새파 사람의 기도보다는 단 한 마디뿐인 세리의 기도가 하나님 입장에서는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은 기도가 된 것입니다.

    물론 바리새파 사람도 하나님께 칭찬을 받고 인정받는 기도를 드리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십 수 년을 목회를 하고 은퇴를 한 이들의 기도를 들어보면, 같은 처지인 제 생각에도 자랑할 것, 내 세울 것 하나 없는 부끄러운 목회자로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대단한 일을 한 영웅처럼 일평생 주를 위해서 헌신한 종들이라는 자화자찬을 하는 걸 보면서, 바리새파 사람에 대한 평가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 하나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날이 언제일지 모르겠습니다. 기도는 일방적인 대화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 까지 들여다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말입니다. 오히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입장을 십이분 생각해 보자고 말입니다. 송나라 때 나온 책 <경행록/景行錄>에는 공자의 말이라 인용한 삼사일언/三思一言이란 말이 나오는데, 세 번 생각하고 한번 말하기라는 뜻입니다. 까닭은 듣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생각하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하물면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이겠습니까? 그러니 오늘 우리 주님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듣고 싶어 하시는 기도는 우리의 어리석음과 허물 등 부끄러움을 가려주고 덮어주는 불쌍히 여김(긍휼)을 빌라고 일깨우십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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