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886호(2022. 12. 19. 월요일).
시편 시 111:9-10.
찬송 216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밤이 주는 아늑함은 그 어떤 것에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늘어놓았던 모든 것을 거두고,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맞는 시간 우리에게 휴식과 위안을 주기도 하지요. 밤이 주는 위안은 예술가에게 때론 영감으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화가나 음악가들이 늦은 밤 혹은 먼동이 터올 때까지 자신의 작업에 몰입할 수 있었던 거겠지요. 작곡가 김순애 역시 그랬습니다. 셸리, 쉬츠, 워즈워스 등, 낭만적인 시를 좋아했던 그녀는, 시를 읽다가 마음에 들면 몇 번씩 암송을 하고, 또 악상이 떠오르게 되면 작곡을 시작했지요. 김순애의 많은 작품은 밤 10부터 새벽 2,3시에 걸쳐 완성됐다고 합니다. 이제 소개해 드릴 <그대 있음에도> 그러한 밤의 정한 속에서 만들어진 작품이지요.
“그대의 근심 있는 곳에 나를 불러 손잡게 하라. 큰 기쁨과 조용한 갈망이 그대 그대 있음에, 그대 있음에 내 맘에 자라거늘. 오, 그리움이여, 그리움이여,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손잡게 해. 그대의 사랑 문을 열 때, 내가 있어 그 빛에 살게 해. 사는 것에 외롭고 고단함. 그대, 그대 있음에 그대 있음에, 사람의 뜻을 배우니. 오, 그리움이여, 그리움이여,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그 빛에 살게 해.”
곡이 지닌 의미 때문에 한때 결혼 축가로 많이 불려지던 곡이었습니다. <그대 있음에>는 1963년 한국일보사가 신년 특집을 위해 시인 김남조와 작곡가 김순애에게 위촉한 곡이지요. 김남조에게 시를 받아 왔습니다만, 딱히 악상이 떠오르지 않아서, 김 순애는 한 달 이상을 구상만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한 달 열흘 넘게 밤을 새면서도 곡에 전혀 진척이 없어서 신문사에게 제시한 마감시간을 맞추지 못할까봐 애를 태우던 차에, 새벽 3시에 갑자기 떠오른 악상으로 완성된 곡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풍부한 감수성과 따뜻한 곡의 분위기에서, 작곡하는 것으로 밤의 외로움을 극복했다는, 작곡가의 진심이 느껴지기도 하네요. 여류 시인과 여류 작곡가가 만들어 낸 수작으로, 우리가곡사에 있어서 매우 귀하고 의미가 깊은 곡이었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년 12월 18일 방송>
2. “앗수르에서 돌아올 남은 자들(10-16절)”을 읽었습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도전과 응전”이니, “과거와의 대화”니 하는 식으로, 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를 가늠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한계점입니다. 그래서 파스칼의 도박(Pascal’s Gambling)은 탁월한 발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신앙의 가치를 무한대라는 수치를 차용(借用)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이성을 앞세우는 인간들에게서는 전무후무한 도박이 될 테니 말입니다. 하나님이 존재하는 대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마이너스 무한대가 될 것이고, 하나님이 부재하는데 그런 하나님을 믿었다면 헛수고에 불과하니 빵점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파스칼은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 여부를 떠나서 플러스 무한대가 된다는 결론에 이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은 자 사상은 한계 상황에 봉착하는 인간에게 있어서는 소위 신의 한수가 된다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인간의 절망과 막다른 골목 앞에서도 하나님께는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이론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능력과 은총을 수용하거나 이해하는 인간에게 있어서는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시니까 인간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완전히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여기서 성경은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바로 주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하신 기도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입니다.
오래 전에 제가 소개한바 있는 기도만능주의자에 관한 일화입니다. 어느 기독교 잡지의 표지모델로도 나오신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 제 강습회에 오셨는데, 제가 “말씀 중심”을 강조하니까 손을 들고 질문하시기를 “기도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근거자료(proof text)로 막 9:29을 들었습니다. 문제는 기도에 대한 오해입니다. 성경 말씀이 가르치는 기도란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것인데, 내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기도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드린 기도대로 이루어진 것은 그리 흔치 않았습니다. 우리 욕심대로 기도한 때문이고, 아직 하나님이 응답하실 때가 이르지 않은 때문입니다. 거기에 더해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기도가 아니라면 무당의 기도와 얼마나 다를까도 고려해 봐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정절을 잃어버린 에브라임, 북왕국 이스라엘의 앗수르에 포로된 자들도 “주께서 손을 드시어 그 남은 백성을 되찾아 오시리라.”고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자기 백성에게 채찍을 드셨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남은 자를 두셔서 되찾으신다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ascal’s Gambling(파스칼의 도박)
구 분 | 하나님이 존재한다 |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 | 판 정(둘을 합한 값) |
믿는다 | 플러스무한대 x 확률 | 최저점수(0) x 확률 | 플러스 무한대 |
안믿는다 | 마이너스무한대 x 확률 | 최고점수(100) x 확률 | 마이너스 무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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