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888호(2022. 12. 21. 수요일).
시편 시 112:4-6.
찬송 35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윤이상 나운영과 함께, 한국 작곡가 2세대를 대표하는 이로 이상근을 꼽을 수 있습니다. 작곡가 이상근은 집안의 반대가 심했던 여타 동시대의 작곡가와는 달리, 언론인이었던 부친이 음악을 좋아해서 유년시절부터 음악을 듣고 익히면서, 자연스럽게 음악과 함께 하는 삶에 동화 되었지요. 스무 살이 채 되기 전, 진주고보 졸업을 앞두고 작곡한, 그 두 곡 <해곡>과 <나의 사랑은>을 통해서 작곡가로써의 가능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곡 김안서의 시에 곡을 붙인 작곡가 이상근의 곡 <나의 사랑은>입니다.
“나의 사랑은 황혼의 수면에 해쓱 어리어 그림자 같지요. 고적도 하게. 나의 사랑은 어두운 밤 날에 떨어져 도는 낙엽과 같지요. 소리도 없이. 나의 사랑은 황혼의 수면에 해쓱 어리어 그림자 같지요. 고적도 하게. 나의 사랑은 어두운 밤 날에 떨어져 도는 낙엽과 같지요. 소리도 없이.”
작곡가가 열여덟 살 때 지은 첫 작품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완숙함이 엿보이는 곡입니다. 우울한 서정을 담아낸 김안서의 시와 곡의 분위기가 잘 어울립니다. 진구 고보 졸업을 앞둔 1940년 전후, 이상근은 부유했던 가정환경에 위기를 맞게 되지요. 일제의 탄압으로 신문들이 폐간과 정간을 당하면서, 신문인이었던 그의 부친은 지국의 문을 닫고, 가세가 점점 어려워지게 됩니다. 불안했던 가정환경 속에서 혼자 풍금을 치며 작곡한 곡이 바로 이곡 <나의 사랑은> 이지요. 습작처럼 작곡된 곡이라고 전해옵니다만, 당시 작곡가가 느꼈을 우울과 고독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년 12월 21일 방송>
2. “이 백성은 계시를 깨닫지 못한다(11-14절)”와 “거룩하신 하나님을 받드는 것이 인생의 도리이다(15-24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입니다. 저의 블로그에 댓글을 남기시는 분 중에는 “와, 저랑 관심사가 비슷하시네요.” 라거나, “마침 찾아보던 글인데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분을 만날 때, 고맙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그런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낯선 분들의 반응은 아무래도 진정성이 떨어지기도 하고, 인사치레라고 생각되곤 하니까요. 오늘 본문은 렘 18:1-12과 함께 하나님과 우리들 인생의 관계, 또는 삶의 의미와 목적을 생각해 보게 하는 아주 설득력이 있는 말씀입니다. 옹기장이와 옹기 비유는 그렇게도 풀기 힘든 수수께끼 같은 우리들 인생을 설명해 줍니다. 맞선보기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있는 결혼제도의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이 맞선보기에서 실패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사진을 통해서 서로의 얼굴을 보았고, 자기 소개서를 통해서 상대를 어느 정도 사전 정보를 가지고 나왔지만, 실제 얼굴을 보거나 몇 마디 얘기를 나누고나서 실망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기대하는 인품이 아닌 때문일 것입니다. 그럴 때 나오는 흔한 질문이, “왜 나를 낳으시려면 키도 크고 얼굴로 잘 생기고 건강하고 지혜도 있는 사람으로 낳지 않았느냐?”라고 합니다. 옹기 중심적인 사고입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그래야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바로 옹기장이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만드셨을까 하고 말입니다.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옹기장이 비유는 매우 귀중한 자료입니다. 옹기장이의 필요에 따라서 그리되었다는 대답 말입니다. 제가 하루 세끼 식사를 준비할 때가 있는데, 아산에 내려가 있을 때는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식사를 준비하는 데는 많은 종류의 그릇이 필요하다는 것 말입니다. 큰 그릇과 작은 그릇은 물론이고, 넓은 쟁반이나 속이 깊은 그릇도 필요합니다. 조리하는 냄비나 프라이팬도 여럿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방에서 사용하는 그릇들이 하나 둘 늘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옹기장이는 주방을 관리하는 주부의 필요를 위해서 다양한 그릇을 만들어야 합니다. 순전히 주부나 가족들의 필요를 위해서 그릇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엉뚱한 데서 문제가 생깁니다. 소위 그릇들의 반란이 그것입니다. 왜 나는 작고 보잘 것 없는 그릇으로 만들었느냐는 항의입니다. 민주주의까지 들먹이며 항의를 합니다. 얼마나 어리석고 바보같은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들 인생살이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서 지음을 받은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의 주방에서 꼭 필요한 도구들로 만들어진 존재들입니다. 귀히 쓰일 그릇으로도, 천히 쓰일 그릇으로도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고민하고 힘쓸 일은, 우리를 지으신 그 목적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삶입니다. 그것이 우리 자신을 자랑스러운 삶으로 데려다 주는 일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남자로든 여자로든, 농부의 자녀로든 회사원의 자녀로든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들 인생의 삶의 의미이고 목적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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