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928호(2023. 1. 30. 월요일).
시편 시 119:36-37.
찬송 86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작곡가 정세문은 유년시절 영민한 아이였습니다. 춘천 사범학교에서 처음으로 오르간을 배우고, 음악에 재능을 발견합니다만, 가정 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교사의 길을 선택하지요. 그러다가 당시 서울 음대 학장이었던 작곡가 김성태의 권유로 서울음대에 들어가게 되고, 한국 전쟁이 끝난 후 모교 인 서울 음대에 강사로 출강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곡가로써 활동을 시작합니다. 이 시기 정세문이 작곡한 곡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은 곡이, 바로 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 <옛 이야기>입니다.
“고요하고 어두운 밤이 오면은, 어스레한 등불에 밤이 오면은, 외로움에 아픔에 다만 혼자서, 하염없이 눈물에 저는 웁니다. 제 한 몸도 예전에 눈물 모르고, 조그마한 세상을 보냈습니다. 그때는 지난날의 옛 이야기도 아무 설움 모르고 외웠습니다. 그런데 우리 님이 가신 뒤에는, 아주 저를 버리고 가신 뒤에는, 전날에 제게 있던 모든 것들이, 가지가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한 때 외워두었던 옛 이야기 뿐만은 남았습니다. 나날이 짙어가는 옛 이야기는 부질없이 제 몸을 울려 줍니다.”
작곡가 정세문이 소월의 시를 읽고서 지금의 초등학교 재학시절 같은 반 급우였던 한 소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과거를 추억하는 작곡가의 담담한 애상이 단조의 멜로디를 통해 전해져 오지요. 1975년 발매된 [한국 가곡 전집] 음반 속에 수록된 곡으로, 바리톤 이훈의 노래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곡입니다. 정세문은 <그리움>, <들국화> 등, 소박하면서도 서정어린 향수어린 곡들을 연이어 작곡을 함으로써 작곡가로써 인기를 이어나갔지요.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1월 30일 방송>
2. “종에서 아들로(1-11절)”을 읽었습니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동창 가운데 백정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백정의 아들뿐만 아니라 산지기 아들과도 놀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더니 그 친구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도회지로 이사를 가고 말았습니다. 우리 사회가 신분제에서 해방된 지 오래되었지만, 지금도 제 또래들이 만나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이런 영향은 여전히 사회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한번은 제가 교단 건물을 짓는 노동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여신도회의 도움으로 떡과 돼지 머리고기를 준비해서 공사장을 찾아갔었는데, 제가 식기도를 하자고 한 후 드렸던 기도 말 중에, “연약한 이 종들을 강건케 하옵소서!”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자 공사 감독으로 일하시는 장로님이 오해 없기를 바란다며, “목사님이 말씀하신 종이란 말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종이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니 오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고 언급하셨던 추억이 살아났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종에서 아들로 신분의 변화를 내용으로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70년전 만 해도 종과 아들의 신분상의 차이는 하늘과 땅처럼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흰 수염까지 나신 저의 큰 집 상머슴은 어린 우리들에게 도련님 아기씨 하며 극존칭을 사용하였고, 우리는 반말을 사용해도 혼이 나지 않았습니다. 바울 사도가 살던 1세기는 종이란 굴레에 살던 사람들은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이 주인에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는 이런 엄혹한 시대에, 종에서 주인의 아들로 신분이 바뀌는 엄청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신분제를 비롯해서, 인종과 종교 그리고 성별과 학력 능력 등으로 사람을 우열로 차별하는 일은 민주주의를 이룩해야 할 매우 중요한 과제의 하나입니다. 그런 면에서 아직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여전히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서 차별하고 제한하는 진화된 신분제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들이 반드시 타파해야 할 큰 숙제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는 자연숭배나 거짓 신앙에 의해서 종노릇하는 세상을 향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어느 누구나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아들과 딸로 새로운 신분을 얻게 된 것을 천명(闡明)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께서 모든 율법 아래 죄의 법아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친히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키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은 어느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동등하며 자유인입니다. 그것을 입증하는 말씀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인간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따라 온갖 굴레를 덧씌워서 수많은 사람들을 각양각색의 종으로 묶은 것입니다. 이 무서운 굴레를 풀기위해서 하나님께서 세상에 오셔야 했고, 친히 십자가를 통해서 이 무서운 장벽을 허물어트리신 것입니다. 이제 모든 사람은 참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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