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929호(2023. 1. 31. 화요일).
시편 시 119:38-40.
찬송 49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시인이자 수필가, 평론가이자 국문학자, 그리고 영문학자이기도 했던 양주동은, 긴 직함만큼이나 다양한 방면에 있어서 박학다식한 귀재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는 계몽 편을 아홉 살에 완파하고, 열 살 때는 이미 대학(大學)을 수학할 정도로 비범한 인물이었지요. 하지만 부친에 의해서 열두 살에 나이로 어머니마저 여윈 뒤에, 시집간 누이의 집에서 성장을 했기 때문에, 양주동은 생애 내내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야 했습니다. 작곡가 김순애가 그의 시에 곡을 붙여 완성은 가곡 <눈>은, 바로 그러한 양주동의 애절한 마음이 담긴 사모곡입니다.
“이 겨울 내 고향 뒷산에, 눈이 몇 자나 쌓였노. 겨우내 싸일 대로 싸여도 쓸 이 없는 어머니 무덤에 차디찬 눈, 어머니 무덤에 차디찬 눈. 겨우내 쌓일 대로 쌓여도 쓸 이 없는, 어머니 무덤에 차디 찬 눈, 어머니 무덤에 차디 찬 눈. 이 겨울 내 고향 어머니 무덤에, 이 겨울눈이 얼마나 쌓였노.”
무애 양주동의 고향은 본래 개성입니다. 하지만 2살 때 가족 모두가 황해도 장연으로 이사를 했고, 그는 자신의 고향을 장연이라고 말하곤 했지요. 12살 때 여윈 어머니 무덤 묘가 있는 곳 역시 장연입니다. 학자로써 막힘이 없고,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는 그였지만 어머니 이야기가 나올 때만큼은 약해져 가는 마음을 숨기지 못했습니다. 양주동이 이 시 <눈>을 지은 것은 일본 와세다 대학교에서 유학하던 1925년이었습니다. 새해 시작을 몇 시간 앞둔 12월 31일 도쿄의 하숙방에서 완성한 작품이지요. 이 날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생신이기도 했습니다. 하나 뿐인 아들마저 곁을 지켜드리지 못하는 생신 날, 고향의 뒷산에서 쓸쓸히 겨울눈을 맞고 계실 어머니의 모습에, 회한의 눈물 대신 완성한 시였던 거지요. 그 절절한 마음이 전해져 오는 것 같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1월 31일 방송>
2. “갈라디아 인들에 대한 바울의 걱정(12-20절)”을 읽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힘든 멍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멍에들이 반드시 부정적이거나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멍에들 때문에 이전보다 훨씬 더 가까워지기도 하고, 더 깊은 속내를 나누는 남다른 관계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와 맺고 있었던 관계에 대해서 매우 비밀스러운 얘기까지 등장하고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그런 내밀(內密)한 이야기가 그들을 한층 더 돈독하게 결속시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이 편지를 쓰는 형편은 바울과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 간에는 풀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매듭이 있는데,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울을 원수처럼 대하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오랜 시간 지도자와 교인의 관계를 맺고 살다 보면 이런저런 오해도 생기고 그래서 사이가 나빠지는 경우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의 관계는 매우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가령 어느 교회가 어렵다 해서 화해조정위원으로 참가했던 일이 있었는데, 그 교회 지도자는 부임하자마자 교회에서 말썽꾸러기로 소문난 중요 재직에게 찾아서 의형제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이 만나면 형님 누님 동생하며 죽이 맞았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게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사람의 심성은 햇빛이 드는 날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흐린 날이 오게 마련인데, 그땐 매우 험악한 천둥 번개 우박을 몰고 옵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바울의 육체가 매우 연약한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를 표현하기를 “만이 여러분은 할 수만 있다면 눈이라도 뽑아서 나에게 주지 않았겠습니까?”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를 두고 훗날 신학자들은 바울이 가진 육체의 질병을 안질, 치질, 간질(지랄병, 뇌전증) 중 하나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의 초상화를 그린 중세의 화가들은 바울의 눈을 선명하게 그리질 않았다고 합니다. 이상의 질병들은 현대의학에서는 이미 다 치료할 수 있게 되었으나 여전히 힘든 질병군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갈라디아 교회와 자신과의 사이가 악화된 대상을 누구라고 지목하지는 않지만, 악령으로 규정하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리스도에게서 하나님의 백성을 이간시키려는 존재는 악령이외에 다른 존재가 없기 때문입니다. 악령은 기회가 생기는 대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올무에 걸려 넘어지도록 유혹하고 있다는 것은 늘 경계해야 할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너무 걱정스러워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술회하고 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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