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935(2023. 2. 6. 월요일).

시편 시 119:57-60.

찬송 464.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작곡가 김대현은 최소의 소리만을 사용해서 초대의 음악적 효과를 내려고 노력한 작곡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장가>나 동요 <자전거>처럼 그의 작품들은 음이 간결해서 따라 부르기 쉬우면서도 유려한 선율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지요. 한국 전쟁으로 피폐해진 1950년대 우리 국민들에게 그의 <자장가>는 따뜻한 집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발길을 재촉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둘도 없는 친구처럼 곁을 지키는 존재가 음악이라고 가곡집 머리말에 새겼듯, 그는 그의 음악을 듣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해 주는 음악들을 작곡했습니다. <그리운 내 고향>은 작곡가 김대현의 바로 그 음악관이 잘 들어나 있는 곡들 중 하나이지요.

    “산 넘고 물 건너 떠나온 고향, 언제나 맘속에 깃들었네. 두 눈만 감으면 찾아가는 곳. 그리운 내 고향 정다운 내 품. 철 따라 언제나 가고 싶은 곳, 사랑하는 어머니 계신 곳일세. 두 눈만 감으면 찾아가는 곳, 그리운 내 고향 정다운 내 품.”

    같은 함경남도에 고향을 둔 아동문학가 강소천의 시에 김대현이 곡을 붙인 작품입니다. 순수하고 정감어린 멜로디와 노랫말이 잘 어우러진 곡이지요. 눈을 감고 들으면 마음은 이미 고향과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함경남도 흥남이 고향인 김대현은 중학시절부터 음악에 대한 동경이 컸다고 합니다. <그리운 내 고향>도 그가 중학생이던 당시 작곡한 곡인데요. 중학생 이었을 무렵 작곡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유려한 선율이 인상적인 작품이지요. 이후 김대현은 도교로 건너가, 도교 음악 제국학교에서 음악 수업을 받은 뒤 귀국해 <들국화>, <훈풍>의 노래처럼 우리 마음을 달래주는 서정적인 곡들을 발표했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26일 방송>

 

2. “마지막 권고와 인사(11-18)”을 읽었습니다. 요즘은 그 좋아하던 잠도 잘 오지 않아서, 긴긴 겨울밤을 뒤척일 때가 많습니다. 숙제를 끝냈을 경우(묵상자료 내일치) 머리맡에 둔 책을 한 두 줄 읽거나, 따뜻한 차를 마시겠다고 거실을 어슬렁거리기도 하지만, 일부러 잠을 청하기 위해서 운동을 하거나 음악을 듣지도 않습니다. 손흥민 선수가 나오는 축구 경기를 시청하거나 <전원일기>를 찾는 편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만일 제게도 마지막 권고나 인사 같은 것을 해야 할 일이 있을까 생각을 해 봤습니다. 부산 YWCA에서 6년을 가르친 성경반을 그만둘 때도, 25년을 가르친 대학 교수직을 그만 둘 때도, 그리고 40년의 지역교회 목사직을 그만둘 때도, 마지막 강의나 마지막 예배를 드렸을 뿐, 그 흔한 이임식이나 송별 예배를 드린 적이 없었습니다. 교수는 강의를 마치는 시간이 끝나는 순간이며, 목사는 예배를 인도하는 마지막 시간이 끝나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던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권고나 인사 같은 것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아주 잘 한 일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사도 바울이 마지막 권고라고 하는 본문을 읽으면서, 더욱 더 그런 생각과 느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평소에 하던 대로 설교하고 가르치고 있으니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할례를 강요하는 사람들을 비난할 뿐 아니라, 할례의 반대쪽에 있는 십자가를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 뿐 아니라 예루살렘 기독교회 안에도 할례주의자들의 입김이 강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믿는 기독교도들을 박해하는 형편에서, 할례를 강조하는 것은 박해를 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새로운 예수 운동에 가담한 무리들이라는 색안경을 쓰고 보지 않도록, 할례라는 유대인스러운 겉옷을 입도록 한 셈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십자가를 가리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까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서 또박또박 힘주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세상은 나에게 대해서 죽었고, 나는 세상에 대해서 죽었습니다.”고 말입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피의 약속입니다. 매우 중요한 상징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매우 흥미로운 한 마디를 덧붙이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내 몸에는 예수의 낙인이 찍혀 있습니다.”고 말입니다. 얼마나 멋진 한 마디입니까? 갈라디아 교회는 이 한 마디로 인해서 할례의 굴레에 갇힌 옛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었을 게 분명합니다.

 

3. “사흘 굶어 남의 담을 안 넘을 놈 없다.”는 속담을 실감했습니다. 비틀거리며 주성농인교회 설교단에 올라갔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힘으로 평소처럼 설교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