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083호(2023. 7. 4. 화요일).
시편 시 149:7-9.
찬송 35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시인 윤공강은 시인으로 등단하기에 앞서, 문학 비평가로 먼저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가 발표한 책 [시와 진실]은 김기림에 이어서, 우리 문학사에 두 번째 시론집이었지요. 1936년 윤공강은 시인으로 등단을 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합니다. 30년대 일제 강점기에 불안했던 사회적 배경은, 시인의 시에도 큰 영향을 주었지요. 나라가 해방되기까지 윤공강은 시와 비평을 통해서, 문학과 사회적인 배경과의 긴밀한 관계를 끊임없이 보여주었습니다. 투옥도 불사하면서 말이지요. 윤공강의 시에는 암흑과 불안 그리고 절망에 쌓인 세상을 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광복 이후, 그의 시는 달라지지요. 이전과는 다르게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서를, 시 안에 담고자 했습니다.
“담을 끼고 돌아가면 하늘을 봐야 한다. 그림자 같은 초가 들창엔 감빛 등불 켜지고, 밤안개 속 버드나무 숲을, 멀리 빛나는 듬벙. 어디선지 염소우는 소리. 또 물 흘러가는 소리. 달빛은 나의 두 어깨 위에 물처럼 여울져, 달빛은 나의 두 어깨위에 물처럼 여울져 흘렀다.”
윤공강처럼 뚜렷하게 문학적인 성향이 변한 사람도 흔치 않습니다. 일제 강점기 암흑과 불안 절망에 쌓인 세상을 문학으로 표현해 냈던 시인은, 광복 후 따뜻하고 여린 감성의 서정시를 발표하지요. 이 시 <달밤>에는 좀 낯선 단어입니다. 등벙이 등장하는데요. 시 안에 등장하는 등벙은 웅덩이를 가리키는 방언입니다. 이처럼 시인은 광복이후 문학을 통해서 한동안 잃을 뻔 했던 우리 민족의 고유의 정서를 되찾는 활동에 주력했습니다. 윤공강은 아주 성실하게 시작에 임했던 전하고 있습니다. 시인으로 등단한 후에 한 달에 두 세편씩은 꾸준히 써서 발표했을 정도로 말이지요. 그의 이름이 동시대의 다른 문인들에 비해서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쉽기도 하네요. 윤곤강 시 윤 용하 곡 <달밤> 이었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7월 3일 방송>
2.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20-26절)”을 읽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한편으로는 고달픈 여행 같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흥미진진한 장터를 지나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5일 장이 열리는 장날이면 저는 어머니를 따라 장을 찾곤 했는데, 세상에나 볼거리가 그렇게 많을 수 없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공터가 있는 곳에 어김없이 펼쳐진 약장수 아저씨의 구수한 입담과 원숭이의 재롱이 굿판이 그랬습니다. 그리고 늘 마음속에는 내가 훗날 돈을 벌게 되면 저 아저씨가 말씀하는 약을 사서 할머니께나 어머니께 드리겠다 다짐하곤 했습니다. 어머니 아픈 증상과 꼭 같은 병에 맞는 만병통치약이란 믿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 만병통치약을 파는 사람들이 여전한 것을 보면 세상 여행은 고달프면서 흥미롭기는 매 한가지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그런 세상살이 한 장면을 보고 있습니다.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은 순진무고한 사람처럼 꾸민 밀정(密偵) 몇 사람을 파송했다 합니다. 그리고 천연덕스럽게 질문하게 합니다. “선생님의 말씀과 가르침은 지당하신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을 차별하지도 않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신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겉 다르고 속 다르다는 말을 알 것 같습니다. 그들의 말씨와 표정과는 너무 다른 무서운 말의 내용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회적 상황은 로마 제국의 식민지로 세금 등의 수탈로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습니다. 이 세상을 힘들게 했던 모든 식민통치 강대국들은 예외 없이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수탈과 만행을 자행하였습니다. 우리나라도 식민통치하던 일본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공포정치를 감행하였고, 심지어는 인류 역사에 듣도 보도 못한 만행인 우리 민족의 얼인 말과 글을 없애려 했고, 이름까지 바꾸도록 강요하는 끔찍한 악행을 가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일파가 된 일 황의 주구들은 이를 두고 무지몽매한 어리석은 백성들을 일깨우고 문명을 발전시키는 은혜를 베풀었다고 나팔을 불어댄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이들을 민족을 저버린 친일파로 정죄하고 용서할 수 없는 이유인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처지에서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들이는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칠 수 없다는 여론을 악용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모든 이들의 생각을 멈춰 서게 만들었습니다. 동전의 형상을 보시며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신 것입니다. 가이사의 것은 무엇이며, 하나님의 것은 무엇입니까? 가이사가 스스로 그려 넣은 자기 형상이야 피할 수 없다손 치더라도, 도대체 하나님의 것이란 무엇입니까? 문익환 목사님은 이 주제로 연세대학 강당에서 설교하실 때,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은 바로 당신이 가장 사랑하신 우리들 인간이라고 말입니다(창 1:26).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께 바쳐지는 삶,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상에 빛과 소금되어 살라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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