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093(2023. 7. 14. 금요일).

시편 시 3:5-8.

찬송 133.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솝 우화에 <여우와 포도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먹을 수 없게 된 포도를 결국 단념하고 돌아가면서 저 포도가 분명 시고 맛이 없을 거라.” 여우가 혼자 중얼거렸다는 이야기지요.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손에 넣을 수 없어 단념하더라도, 나름의 위안은 필요했을 테니까 말이지요. 그것이 조금 억지스럽다고 해도, 여우에게는 상심하거나 절망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반어법이었을 테니 말입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포도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나이를 먹는 것도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먹어보지도 않고 맛이 없고 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점점 많아지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지요. 귀찮고 번거로워서, 혹은 뭔가를 걸고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아서, 포기하는 것들이 점점 더 많아지니까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포기하는 포도를 따먹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일들이, 영 무안하게 느껴지기도 하지요. 그렇게 결국 우리에게는 맛보지 못한 포도들이 늘어만 갑니다. 마음의 포도밭은 점점 좁아져 가고 말이지요.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715일 방송>

 

2. “베드로의 장담(31-38)”을 읽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요한복음서에도 등장합니다(13:36-38). 그러니까 모든 복음서에서 다 취급하고 있다는 것이니, 모든 크리스천들이 제대로 알아야할 말씀으로 들립니다. 사전에서는 확신을 갖고 자신 있게 하는 말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철부지가 아니라면 나이가 들고 부터는 잘 하지 않게 되는 것이 장담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장담을 잘 하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의 이름이 베드로입니다. 이런 장담을 잘하는 이들이 배울 경구가 있는데, 삼사일언(三思一言)이라는 공자의 말씀입니다. 한 마디 말을 하기 전에 세 번 생각해 보라는 의미입니다. 말의 실수는 몽둥이질보다도 훨씬 더 파괴력을 가진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역시 마지막 만찬 후의 담화 중의 한 마음인데, 한 가지 큰 특징이 있는데, 마가복음서와 마태복음서와는 달리, 누가복음서와 요한복음서에서는 주님과 베드로 사이에 나눈 개인적인 말씀처럼 기록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의 옛 이름인 시몬이라는 이름을 부르신 후에 네가 믿음을 잃지 않도록 기도하였다. 네가 나에게 다시 돌아오거든 형제들에게 힘이 되어다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의 배신을 암시하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주님과 함께라면 감옥에도 가겠고, 죽어도 좋겠다고 장담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런 베드로에게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요즘 유행어 가운데 근자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설명이 재미있습니다. “민폐로 분류되는 성질 중 하나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흥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찌하여 베드로를 비롯해서 사람들은 민폐를 뻔히 알면서도 장담이나 근자감에 해당되는 말들을 하는 것일까요? 대정부 질문에 나선 국무위원들 가운데는 받은 질문이 억울한 심정을 표현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직을 걸 테니까 의원님은 뭘 거시겠습니까?”라고 말하는 분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베드로를 대상으로 살핀다면, 첫째로 그는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 손가락에 장을 지진다는 말을 내뱉는 위인들치고 손가락이 몇 개는 부족할 것 같은 전과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팩트 체크도 안 해봤거나, 자신의 지식이나 능력이 턱없이 모자라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눈앞에 닥친 위기를 넘기려고만 할 때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기 어렵게 되는 경우입니다. 두 번째는 장담이나 근자감에 특화된 사람들은 평소에 사려 깊지 않은 생활태도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베드로는 앞에 나서기를 잘 하는 타입이었습니다. 적극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결과들을 보면 사려 깊지 못한 어리석은 성격을 가졌음을 스스로 공개한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실례가 물위를 걸으시는 주님께 물위로 오라 명해 달라 해서 물 위로 뛰어들었다가 풍랑을 보고 물에 빠져 창피를 당한 경우나(14:22-33), 오늘 본문을 꼽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렇게 나설 필요가 없었지만, 그런 엉뚱한 태도로 살아왔던 것입니다. 사려 깊지 못한 생활태도를 돌아볼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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