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103(2023. 7. 24. 월요일).

시편 시 6:7-10.

찬송 44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한 걸음 물러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지요. 삶의 한 가운데 그 중심에 머물러 있지 않고, 마치 내 일이 아닌 것처럼 조금 멀찍이 떨어져서 관조하듯 바라보는 그러한 것 말입니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펼쳐지는 누군가의 생활에, 계산 없이 그저 들여다보듯이 말이지요.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하는 모습조차도, 열정적으로 사랑해 볼 때나 해석할 수 있을 딱 그만큼의 거리 말입니다. 마음의 거리를 두고서 스스로를 낯설게 하는 일은 그처럼 때로 너무 스산스럽게 느껴졌던 삶을, 풍경화 바라보듯 정적으로 지켜볼 수 있게 만들기도 하지요.

    “아카시아 향기 사이로 걸어보아라. 걸어온 날들이 거기 있더라. 초록의 눈빛들이 숲이 되어 흔들리고 햇살 속에 스며드는 기억 한 조각. 늘 걷던 길이 그림이 되어 걸어가더라. 아카시아 꽃 잎 사이로 걸어보았나? 지나온 날들이 거기 있더라. 새파란 잎사귀들이 파도처럼 물결치고, 햇빛 속에 묻어놓은 기억 한 조각. 늘 보는 하늘, 그림이 되어 다가오더라.”

    이 소연 시 이 종록 곡 <아카시아 향기사이로> 감상하였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724일 방송>

 

2. “숨을 거두신 예수(44-49)”무덤에 묻히신 예수(50-56a)”를 읽었습니다. 오래 전에 한 지인이 제게 묻기를 목사님의 성실함이 부럽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별반 이익도 되는 것 같지 않은데 목숨이라도 걸 듯 열심이십니까?” 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대답이 궁해서 그냥 감사합니다.”고 지나갔지만, 오랜 숙제처럼 명치끝에 뭉쳐있었습니다. 요즘 그게 확실해져서 말씀드립니다. “의미가 있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고, 그 열매는 보람을 낳기 때문입니다.” 의미가 있는 일이면 조금 힘들어도 열심히 하고 싶고, 그러면 틀림없이 보람이란 열매를 거둔다고 말입니다. 오늘 묵상은 첫째 단락입니다. 문선명의 <원리 강론>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세상을 구하러 올 메시아는 죽어서는 안 될 인물이라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문선명 <원리강론>, pp,158-159). 그러니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생애를 실패작이라고 단언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주님은 처음부터 십자가를 짊어지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음을 언급하는 말씀들이 구약과 신약에 깔려 있습니다. 구약의 어린양 사상이 그렇고, 말구유에 태어나신 일과 헤롯의 칼을 피해 이집트로 피신 갔던 일화 등이 그렇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죽으심은 예고된 일이었으니 너무 슬퍼하지도 낙망해서도 안 될 일입니다. 무려 6시간동안(3시에서 9시까지) 십자가에서 피와 물을 다 쏟으신 후에 말입니다. 그리고 여느 인생과 같이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참 많은 주검들을 목격했습니다. 가족으로부터 교우들 친구들 그리고 교계 지도자들과 나라를 다스리던 통치자들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예외 없이 인생의 허망함을 깨우쳤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한없이 짧은 찰나(刹那)인데, 옛말처럼 고종명(考終命)도 못하고 떠나가는 분들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습니다. 제 조카 녀석도 젊은 아내와 아들을 남겨두고 먼저 떠나갔습니다. 겉으로 보아선 삶이 힘들고 괴로워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사지(死地)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분이 예수님이 라 생각했습니다. 죽음 앞에서 얼마든지 살길을 찾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만, 주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왕도 아닌데 왕이라 시인하셨고, 백성을 선동하지도 않았는데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인정하셨습니다. 그리고 허망한 한 마디 말을 남기셨습니다.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당신의 생명이 아버지의 손에 달린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장난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무 걱정 말아라. 나는 주님 나라에 간다.” 호언장담하는 이들은 모두 사기꾼들입니다. 그걸 확신이라는 말로 위장을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 배워야 합니다.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아무리 성경이 자신감을 준다 해도 그럴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전원생활은 편한 아파트 생활과는 전혀 다릅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는 말입니다. 구입 후 15년이 지나선지 고칠 곳도 많습니다. 억지로라도 일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