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137호.
시편 시 16:5-8.
찬송 24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영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구두를 신은 자신 외에는 구두의 어느 부분이 발을 아프게 하는 지 아무도 모른다.” 아무리 모양이 예쁜 신발이라고 해도, 내 발에 잘 맞고 편한 지는 직접 신어보기 전엔 알 수 없는 것처럼, 겉으로 나타내지 못하는 나 자신만의 고민 걱정거리 하나쯤 갖고 계시겠지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속을 다 알 수 없지 않아요. 다른 사람을 더 배려하고 너그럽게 이해하는 마음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KBS FM 1, 새아침의 클래식, 2008년 8월 28일 방송>
2. 오늘은 성령강림절 후 열 셋째주일로, 사 51:1-6을 본문으로 “하나님의 현존인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당신의 말씀으로 인식한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실 때부터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으로 당신의 뜻을 나타내셨고, 당신의 말씀으로 축복과 저주의 삶을 확정하셨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인식이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매우 보잘 것 없는 신앙인이었음을 말씀하십니다(1-3절).
“개구리 올챙이 적 모른다.”는 속담[과두시사(蝌蚪時事)]이 있습니다, 올챙잇적 일은 감추고 싶어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출세한 사람은 과거의 자신의 초라했던 과거를 잘 아는 친구들을 피한다 합니다. 아브라함은 유대인들 모두가 떠받드는 신앙의 조상이며, 소위 성공한 신앙인입니다만, 사실은 그 역시 매우 초라한 옛 시절이 있었습니다. 마치 성전의 화려한 돌들이 채석장에서 뒹굴던 때처럼, 깊이 감춰있던 캄캄한 동굴에 지내던 삶처럼 말입니다. 이렇듯 한 때는 부끄러운 삶을 살던 존재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자랑스럽게 그리고 위대하게 바꿔주셨다는 말입니다. 이 같은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서 이룩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할 이유입니다. 황무지를 에덴으로 만들고, 허허 벌판을 야훼의 동산으로 만들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 하십니다(4-5절).
신앙인으로써 극복해야 할 매우 중요한 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 중심에 반대되는 하나님 중심이라는 주제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2세기 르네상스는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에서 인간 중심의 세계관으로의 거대한 격동의 시대를 불러왔습니다. 순기능을 말할 때 인간의 재발견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자적 신앙, 근본주의 신앙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기능도 살필 수 있는데, 하나님 중심의 인간 본래의 삶이 약화되고 축소된 것이 그것이라 하겠습니다. 종교개혁은 이 두 주제 사이를 줄타기를 하듯 조심스럽게 통과하던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위대함과 공로에 취해 있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재발견,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할 것을 깨닫게 한 계기였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말씀에만 주목해야 한다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말씀으로 자기 백성들과 함께 존재하고 계십니다(6절).
우리 인간은 현혹되기 쉬운 매우 연약한 존재입니다. 가령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 많은 보조 수단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데 최적의 장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수단으로써 성화나 성상들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있다면, 모든 보조수단들은 잠잠해야 합니다. 말씀이 선포되는 그 자리에 하나님께서 현존하신 때문입니다(요 1:1-3). 그런데 하나님의 현존인 말씀보다 성전과 성화 그리고 성상이 더 중요하게 그리고 우선적으로 취급되고 있다면, 이것은 엄청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종교 개혁은, 말씀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근거로, <이신득의의 신앙>(롬 1:17)을 찾아냈고, “너희도 가려느냐?” 란 주님의 물음에, “영생의 말씀이 계시오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요 6:68)라고 정답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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