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219호(2023. 11. 17. 금요일).
시편 시 31:13-15.
찬송 5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소중한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습니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사진을 다시 보면 그 순간은 영원히 머물러 있긴 하지요. 헌데 기억이란 참 신기하지요? 또렷하게 남는 것이 있으면 흐려지고 희미해지는 것도 반드시 존재하는 걸 보면 말입니다. 그 나머지 부분들은 사라지고 잊혀지지요.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소멸해 버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작은 존재들을 하나도 기억해 내지 못하지요? 이 가을, 눈길 한번 받지 못하고, 서서히 사라져가는 들국화의 존재처럼 말입니다.
“하늘 싣고 고요히 흐르는 시내, 산들산들 기슭에 스치는 바람, 시내 기슭 풀밭에 시들을 꽃 잎. 바람 따라 넘노는 하얀 들국화. 너울너울 풀밭을 도는 흰 나비. 한들한들 바람에 넘노는 국화. 서리 맞은 국화엔 외로운 나비, 해뜻해뜻 시내에 어린 그림자. 갈바람이 우수수 넘노는 기슭. 송이송이 탄식하는 하얀 들국화. 너울너울 풀밭을 도는 흰 나비. 한들한들 바람에 넘노는 국화.”
홍난파가 작곡한 우리 가곡 <봉숭아>가 그랬던 것처럼, 이 곡 <가을 국화>는 초기 우리 각곡이 지녔던 비감이 곡 안에 가득합니다. 안서 김억은 김소월의 스승으로 더 이름을 알려 시인으로써는 조금 폄하되기도 했지요. 실제로는 직접 창작을 하기보다 중국의 한 시나 우리의 전통 시가들을 번역한 작품들에서 더 많은 평가를 얻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번역이라고 하더라도, 글이 지닌 분위기를 안서 김억은, 우리 글로 가장 잘 되살려냈지요. 그런 과정 역시도, 뛰어난 문학적 재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김안서 시 김성태 곡 <가을국화> 소개해 드렸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11월 17일 방송>
2. “예루살렘성 봉헌식(27-43절)”을 읽었습니다. 순교자 유스티누스의 <변증서 1>에 의하면, 주후 2세기(A. D. 140년경) 초대교회는 예배를 드리러 온 성도들은, 예배인도자가 올 때까지 예배당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도자가 도착하면 찬송을 부르며 집례자를 따라서 예배당으로 입장을 하였는데, 순서는 촛불을 든 사람이 맨 앞에 그리고 성가대와 예배 집례자 그 다음에 성도들이 그 뒤를 따랐다고 합니다. 촛불은 빛을 밝히는 도구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며,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신 것이 사람들이 부르는 찬송이었기에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던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래선 지는 몰라도 루터는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두 가지 선물로 하나는 성경을 다른 하나는 찬송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루터교회에서 최초로 회중찬송(choral)이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느헤미야의 감동아래 52일의 강행군으로 수축한 예루살렘 성벽은 드디어 봉헌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가장 신경을 썼던 것이 합창대원을 모으는 일이었는데, 이것을 예건한 지도자들은 합창대원들을 예루살렘 주변 마을에 모여 살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식을 집례할 레위인 들을 모아 사제들과 함께 목욕재계를 하고 부정을 씻는 의식을 행한 후 봉헌식을 거행했다고 합니다.
봉헌식의 장면은 장관이었습니다. 유다 지도자들은 성곽 위로 올라오게 하고, 대찬양대는 둘로 나누어서 한 찬양대는 오른쪽으로 돌게 하고 그 뒤를 호세야가 앞장을 서고 유다 지도자 절반이 따르게 하고, 다윗 궁 윗길에서 수문에 이르게 하고, 다른 한 찬양대는 느헤미야가 앞장을 서고 유다 지도자들 나머지 절반과 많은 사제들이 뒤를 따라 왼쪽으로 돌았는데, 이즈라히야의 지휘에 따라 백성들과 함께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고 했습니다. 유다 지도자들은 물론 백성들과 감격에 벅차 그 찬송 소리는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 장면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핸가 전남 순천의 낙양읍성 성곽 밟기를 시청한 일이 있었습니다. 악귀를 내쫓는다는 의식이라고 하지만, 아마도 두 번 다시는 이 성곽이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단단하게 성곽을 다진다는 의미를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예루살렘 성곽을 밟는 이 장엄한 행사는 그런 애국심을 북돋는 신앙심도 섞여 있었을 것입니다. 찬송과 성벽 밟기는 잘 어울리는 봉헌식의 한 순서가 되기에 안성맞춤이었을 것입니다. 우리 역시도 모든 삶의 내용을 신앙으로 연결 지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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