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217호(2023. 11. 15. 수요일).
시편 시 31:7-9.
찬송 8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랫동안 역사 속에서, 밤은 음습한 시간으로 홀대 당했습니다. 어둠을 틈타 악령과 범죄가 혼재하는, 하루 중 가장 위험한 시간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과거 홀대 받았던 그 밤의 시간이 없었다면, 우리는 빛과 소음에서 해방된 진정한 휴식을 결코 누릴 수 없었겠지요. 주옥같은 글들과 음악 역시도 탄생될 수 없었을 겁니다. 예술가들은 밤의 고요와 적막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더 내밀/內密 히 들여다볼 수 있었지요. 그리고 밤의 품 안에서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작품들을 서서히 완성해 갔습니다.
“어디서 부는지는 알 수 없어도/ 별들이 고요하게 잠자는 밤에/ 멀리서 가냘프게 피리소리가/ 어둠을 헤치며 들려옵니다. 어디서 부는지는 알 수 없어도/ 별들이 고요하게 잠자는 밤에/ 멀리서 가냘프게 피리소리가/ 어둠을 헤치며 들려옵니다."
이 곡에 글을 쓴 사람은 아동 문학가 이 원수입니다. 이원수 선생은 방정환과 함께 어른들에게 배려 받지 못했던 우리나라의 어린이들을 위해서, 아동문학이라는 장르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지금의 초등학교와 같은 보통학교 6학년 때, 선생의 지은 시가 바로 널리 알려진 <고향의 봄>입니다. 아동문학가로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만, 선생 역시 고난의 역사를 꿰뚫고 살아왔지요. 1911년 생으로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지나, 나라가 이제 살만해진 1981년생을 마감합니다. 겨울 <동>자와 벌판 <원>자를 쓴 아호 冬邍은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었지만, 선생의 마음의 빈자리를 늘 채우지 못했던, 선생의 쓸쓸한 삶을 말해 주는 듯도 합니다. 이 원수 시 장 일남 곡 <밤> 소개해 드렸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11월 14일 방송>
2. “초막절을 지키다(7:73-8:3)”을 읽었습니다. “기뻐할 일도 없는데 어떻게 기뻐하며, 감사할 일도 없는데 어떻게 감사할 수 있습니까?” 목회자로써 들어봄직한 질문입니다. 그동안 저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불평불만을 가진 교우들의 푸념으로만 들어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격다짐 격으로 무조건 기뻐하라든지 무조건 감사하라고만 대답하지 않았는가 하고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만일 그런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기뻐할 황홀한 마음을 갖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더라면, 그런 사람에게 감사할 뜨거운 감격의 마음을 갖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더라면 말입니다. 막무가내로 공부하라만 다그칠 것이 아니라, 공부하고 싶은 마음을 품게 해야 했습니다. 선한 일에 기쁨과 보람을 갖는 그런 마음을 품게 해야 했습니다. 가능한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체벌이라고 생각합니다. 낙제 점수를 주는 일도 지능적인 체벌이고, 회초리를 드는 일이나 학부형을 학교로 소환하는 일도 체벌입니다. 둘째 방법은 완성도가 높은 것으로 깨달음을 주는 일입니다. 어릴 적부터 위인전을 읽게 해서 위인들이 품었던 마음을 갖게 하거나, 훌륭한 선생님께 자녀를 맡기는 일입니다. 인성교육에 중점을 두는 좋은 가정교사나 거창고등학교 같은 학교에 보내는 일입니다. 사춘기의 학생들이 빗나가기 쉬운 것을 빨리 눈치 챈 조 아무개 거창고 선생이 들려준 이야기는 감동적이었습니다. 문제가 된 학생을 자신의 집으로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같은 방에서 잠을 자게 했다 합니다. 그리고 잠자는 척하고 그 학생에게 팔베개를 해 주었다 합니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부터는 그 학생의 생활에 큰 변화가 왔다 합니다. 깨달음을 가진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들은 다시 자신들의 성읍에 자리를 잡고 살게 되었는데, 7월이 되자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들었고 지도자 에스라에게 모세의 법전을 읽어달라고 청을 한 것입니다. 말귀를 알아듣는 사람들이 해 뜰 때부터 해가 중천에 이르기까지, 온 백성이 율법을 귀담아 들었다고 했습니다. 놀랍고 놀라운 일입니다.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한 것입니다. 그 백성들의 마음에는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 그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증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미래를 똑바로 바라보게 할 진리의 말씀이 간절하게 목말랐던 것입니다. 70년의 포로생활에서 생겨난 가장 큰 꿈인 야훼 하나님을 섬기고픈 신앙의 회복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이런 자발적인 욕망을 불러일으킬 동기를 자극한 것이 굴욕적인 포로 생활이었던 것입니다. 그리해서 초막절을 기쁨과 감격으로 지키게 된 배경이었습니다.
3. 이번 주간은 고교-대학 동창 그리고 가족 미팅이 줄을 섰고, 병원 검진도 있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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