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253호(2023. 12. 21. 목요일).
시편 시 36:8-10.
찬송 23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톨스토이의 작품 가운데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라는 단편 소설이 있습니다. 선문답禪門答을 하듯 이어지는 물음에 작가는 마치 이야기하듯이 마지막에 말을 합니다. “사람은 사람이 있어서, 사람의 사랑이 있어서 살아갈 수 있다.”고 말입니다. 누군가가 내게 건네준 사랑은 신기하게도 그 사람이 떠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 앞에 덧붙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불멸의 사랑이라고 말이지요.
“내 마음 그 깊은 곳에/ 내 마음 그 깊은 곳에/ 그리움만 남기고 떠나버린 그대여/ 내 마음 먹구름 되어/ 내 마음 비구름 되어/ 작은 가슴 적시며 흘러내리네/ 아, 오늘도 그 날처럼 비는 내리고/ 내 눈물 빗물 되어 강물 되어 흐르네/ 그리움 그 깊은 곳에/ 그리움 그 깊은 곳에/ 바람만 남기고 떠나버린 그대여/ 내 마음 열어 보아도/ 내 마음 닫아보아도/ 작은 가슴 적시어 흘러내리네/ 아, 오늘도 그 날처럼 비는 내리고/ 내 눈물 빗물 되어 강물 되어 흐르네.”
우리 가곡이 지닌 서정성이란 이런 것이다, 작품은 직접 보여주는 것도 같습니다. 사람은 떠나도 마음은 남는 것 이라는 한 구절이, 더불어 떠오르기도 하고요. 듣고 있으면 쉬운 곡처럼 느껴져서 따라 불러봅니다만, 직접 부르면 쉽지 않은 곡들이 간혹 있는데요. 아마 이 곡 역시도 그런 작품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내 마음 그 깊은 곳에> 이 곡은 2000년 한국 작곡가회 초청 가곡의 밤에 초연되었습니다. 테너 박세원의 선명하면서도 풍부한 음색이, 곡이 지닌 서정성과 잘 어우러집니다. 김명희 시 이 한삼 곡 <내 마음 그 깊은 곳에> 소개해 드렸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12월 19일 방송>
2. “다섯째 환상(1-14절)”을 읽었습니다. 지난 시월 대구의 한 합동측 장로교회에서 특강을 하였습니다. 성경읽기를 주제로 하였기에 첨예한 문제가 될 수도 있어서 목사님의 양해를 구하려 하였는데, 목사님은 신학에 구애받지 말고 얘기해 달라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우리 묵상식구들 가운데 극 보수에 속한 분들과 몇 분 로마 가톨릭 교우들도 계셔서 조심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루터교회 목사인 이상 저는 제 신앙을 따라 말하겠다 작심한지 오래입니다. 듣는 분들은 자기 식대로 들을 테니 걱정할 일은 없다 생각하고 말입니다. 한 가족 중에도 진보 보수가 뒤섞여 살고 있는데 가슴 졸이며 말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자기 식대로 들으면 될 일입니다. 그러나 논리나 신학은 일관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잠든 예언자를 천사가 흔들어 깨우자, 눈을 비비며 바라본 환상으로, 금 등잔대의 꼭대기에 그릇 하나가 있고, 주위에 일곱 개의 심지가 달린 등잔이 붙어 있었고 등잔대 좌우에 올리브 나무가 하나씩 서 있었습니다. 이게 무엇이냐고 묻자, 천사가 해석을 해 줍니다. 대제사장 스룹바벨이 해야 할 일을 일러주는 환상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대목은 사람의 권세나 힘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을 받아야 될 일이며, 산이 아무리 크다 하여도 스룹바벨 앞에서는 한낱 평지에 불과하다고 말입니다.
환상을 해석하는 일은 다른 사람의 꿈을 해몽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경상도 고성에서 부산으로 이사해 온 교우가 있었는데, 새벽 기도회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어젯밤에 꾼 꿈 얘기를 꺼내놓고 해몽을 부탁하곤 했습니다. 그때 배운 것은 꿈을 꾼 장본인이 더 잘 아는 것이었으며, 본인이 해석하도록 꿈의 내용을 나누어 질문해서 대답을 끌어냈던 추억이 생각납니다. 다행히 오늘 본문도 그런 방식으로 그 해석을 가능케 하고 있다 생각했습니다. 우선 스룹바벨에 관한 환상에서는, 성전 재건이 한 2년 시작되다가 무려 14년이나 중단되는 사고가 생겼던 역사적 배경이나, 솔로몬의 성전에 비해서 너무 초라한 규모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을 염두에 두게 합니다. 이런 배경에서 천사를 통해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반드시 기초석을 놓은 스룹바벨에 의해서 성전이 완공될 것인데, 여기에는 사람의 권세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셔서 가능했다는 말씀과, 일곱 등잔이란 천하를 살피시는 하나님의 눈으로, 사람들에게는 초라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성전이라는 점, 그리고 등잔대 양 옆에 있는 두 그루의 감람나무는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총독 스룹바벨과 제사장 여호수아를 암시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역사를 성취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적재적소에 부르신다는 뜻입니다. 결국 인류 역사는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신다는 사실을 믿게 하려는 환상이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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