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421(2024. 6. 6. 목요일).

시편 시 68:22-24.

찬송 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명사들의 좌우명 등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경구/警句들을 묵상중입니다.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을 쓴 미국의 전원시인인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그곳을 빠져나가는 최선의 방법은 그곳을 거쳐 가는 것이다.” 흔히들 병법/兵法으로 치자면 정공법이라 할 말입니다. 부딪히지 않으려고 주위만 맴돌면서 살지 말자는 말입니다. 부딪힐 것은 반드시 부딪힙니다. 그러나 한번 부딪혀 봅시다. 박성완, 24. 6. 4.

 

2. “가라지의 비유(24-39)”을 읽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매우 흥미롭고 또 한편으로는 재미있습니다. 어패가 있다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오늘 가라지의 비유를 읽으면서 그 사실이 더욱 명확해졌습니다. 저는 매일 정확히 52명에게 묵상자료를 배달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배달했던 대상들은 1,000명은 족히 더할 것입니다. 그러면 제가 엄청 피곤해 집니다. 저는 피드백이라는 교육이론을 좋아하는데, 최소한 반응을 알고 싶어서, 매일 제 생활일기장에는 묵상자료를 읽은 분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습니다. 그리고 누가 클릭조차 하지 않을 만큼 바쁘게 살고 있는지를 알게 되고, 누가 묵상자료를 보내자마자 클릭하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얻는다 생각합니다. 첫째는 부지런한 사람(새벽형 인간)과 조금은 느려터진 인간(저녁형 인간)을 구분할 수 있고, 다른 또 하나는 보잘 것 없는 성경 해석을 읽어주는 분들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은 든든합니다. “, 요새 뭐해?” 묻는 나이 어린 대학동창에게 그 말을 했더니, “속지 마세요. 클릭만 하고 읽지 않는 사람들이 많을걸요.”라는 겁니다. 그때부터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늘 왜 길게 쓰느냐고 줄여보라고 충고(?)하는 분은 안 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게 된 겁니다. 그러나 몇 월 며칠 분이 빠졌다고 다시 보내달라는 분은 읽고 있구나 싶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만감이 교차합니다. 여러분도 저처럼 그러실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래서 읽어주시고 피이드백을 보내주시면 더 감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번째 드는 생각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가라지를 뿌리는 원수(저는 악당으로 생각)들을 그대로 두시는 걸까? 이런 저 같은 생각을 하는 신실한 종이 와서 원수가 뿌린 가라지를 뽑자고 건의를 드리자, 왜 가만두라고 하시는 걸까? 가라지를 뿌려도 아무 후속 체벌이 없으니까 너도 나도 따라서 온갖 행패를 다 부리는 것 아냐? 요즘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유명 로펌이 사건을 수임하면 수임료 외에 성과급으로 수십억을 받는다는 항간의 얘기가 제 주변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합니다. 상식과 공정은 우리 시대에서는 엿 사먹었다 봅니다. 그러니 이놈도 저놈도 돈에 목줄을 매고 온갖 불법 탈법을 자행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따지고 보니 오늘 말씀에서 기독교인들이 가장 잘 배운 것 같습니다. 악당들을 관두고 계시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타락한 인간에게서 너무도 당연한 일이니까요. 문제는 그걸 가만히 바라만 보시는 하나님이 문제입니다. 얕은 생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 사람에게도 기회를 줘야 하지 않겠느냐? 즉결재판을 하면 살아남을 인간이 몇이나 되겠느냐? 너도 무사하지 못할 것 아니겠느냐? 그러니 천당과 지옥은 멀리 있으니 천천히 준비하고 지금 당장은 수단방법 가리지 말고 잘 살고 보자. 유전 무죄 무전 유죄가 괜히 생긴 말이겠느냐? 하십니까? 그래서 두 번째 생각에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하나님의 큰 사랑이라고 말입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와 기다림으로 견디고 계실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그 깊고 너른 마음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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