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422(2024. 6. 7. 금요일).

시편 시 68:25-27.

찬송 35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아침에 읽은 명언은 <피파의 노래>라는 시를 써서 유명한 영국의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의 한 줄 명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슬픔은 아주 오래된 즐거움인지 모른다.” 브라우닝은 부유한 은행가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학교를 가지 않았고, 노예폐지론자인 아버지의 영향인지, 많은 평화의 시를 남겼습니다.

    ‘슬픔이 없는 곳은 없다. 고통이 없는 곳, 절망이 없는 곳을 찾아 헤매지만 그런 곳은 결코 없다. 그러나 눈을 들어 슬픔 너머를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슬픔이 곧 기쁨이고, 절망이 곧 희망이라는 것을 안다. 슬픔 너머를 바라보는 사람에게만 그 건너편이 보인다.’ 고 미네르바의 희망씨는 말한다. 희망씨, 가슴에 새기는 한 줄 명언, p.230. 박성완 24. 6. 5.

 

2. “겨자씨의 비유(31-32)”누룩의 비유(33)” 그리고 비유로 가르치시는 이유(34-35)”을 읽었습니다. 겨자씨의 비유나 누룩의 비유는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자연스러운 비유입니다. 마치 이솝의 이야기를 읽는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비유 자체로 많은 것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가령 겨자씨의 비유나 누룩의 비유는 매우 작은 것이 시간이 지나고 세상에 적응하게 된다면 큰 나무로, 또는 큰 덩이로 부풀어 오르게 된다는 교훈 말입니다. 그러니 너무 이른 나이에 혹은 너무 이른 시기에 자기 자신을 소홀히 여기거나 무시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그 씨 안에는 그리고 그 누룩에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는 것과 그리고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배우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옛날 속담이나 유명인들이 남긴 좌우명 등을 많이 수집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팔십 나이에 들어설 찰나에 그렇게 많은 책이나 수집물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두툼한 책에서 단 한 줄도 마음의 양식으로 건지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책방에 가는 일을 줄이려고 합니다. 돈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허세를 덜어놓기 위함입니다. 각설하고, 겨자씨의 비유는 여러 가지 각도에서 바라볼 때, 참 유의미한 이야기입니다. 비록 작은 씨알 하나에도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엄청난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다는 것 말고도, 그 효용가치 또한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볼품없이 매우 작은 겨자씨가 자라 큰 나무가 되면, 공중의 새들이 날아들어 깃들이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커다란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 정체성에 대해서 너무 소극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전혀 대단하지 않다는 그런 어리석음 말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나를 그리고 이웃을 더 깊이 알아보려 합니다.

    누룩의 비유는 어떻습니까? 겨자씨의 비유와 누룩의 비유는 첫 번째 역할내지는 임무에 있어서는 많이 닮았습니다.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작은 누룩이 그게 습한 환경조건을 맞추어 주기만 하면 부풀어 오르는데 상상 이상으로 부풀어 올라서 마침내 큰 떡덩이가 만들어 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임무에서 우리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먹고도 남을 빵을 만들어 준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다른 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겨자씨가 세상에 있는 다른 많은 존재들에게 깃들이고 공동체를 만들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회를 만든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는데 반해, 누룩은 그가 하는 일을 통해서 천국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하면 누룩 비유는 우리들로 하여금 천국에 대한 여러 가지 궁금하고 불안스럽게 생각하는 것들, 과연 천국은 존재할까? 천국에서의 삶은 이 세상과 어떻게 다를까? 등등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미래에 대해서 또는 사후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신앙인이라는 사람들이 마치 하늘나라가 없는 것처럼 한걸음 더 나아가서 심판이 없는 것처럼 난장판을 만드는 것을 보고, 그런 생각을 더 하는 모양입니다. 우상 숭배자를 자신의 인생을 지켜줄 신처럼 생각하는 한국의 크리스천들을 보고는 더욱 절망하는 모습입니다. 우리나라는 건국 이래로 이념 논쟁으로 상처를 많이 입었습니다. 조봉암이 그랬고 조봉옥과 신익희가 그 희생양이었습니다. 최근에는 한명숙 총리나 문익환 목사가 그런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대법원 판결로 그들에게 씌워졌던 죄목은 모두 허위 날조로 만들어졌으므로 무죄가 선포된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빨갱이나 김정은 지령을 받는다느니 하는 빨갱이론은 실체가 없는 유령 이념들이었습니다. 그렇게 빨갱이라고 목의 힘줄을 돋우는 연사들은 대한민국 법률에 따라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하는데, 선거철만 끝나면 조용해지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법원에 가기만 하면 무죄가 되어 역고발을 당할 것을 뻔히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룩 비유를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기독교회가 나약해지고 있다고 걱정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진짜 기독교인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는 것은 너무 큰 기대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누룩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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