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428호(2024. 6. 13. 목요일).
시편 시 69:7-9.
찬송 29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마도 청계천 고서점에서 구입했을 것이다. 그 후로 내 손에 들어온 채근담/菜根譚은 이리저리 잘도 써 먹었다. 채근담이란 중국 명나라 말기에 문인 홍자성(홍응명(洪應明), 환초도인(還初道人))이 저작한 책으로, 인생의 처세를 다룬다. 책의 구성은 전편 222조, 후편 135조로 구성되었고, 주로 전편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을 말하였고, 후편에서는 자연에 대한 즐거움을 표현하였다. 채근/菜根이란 나무 잎사귀나 뿌리처럼 변변치 않은 음식을 말한다. 유교, 도교, 불교의 사상을 융합하여 교훈을 주는 가르침으로 꾸며져 있다. 오늘 소개하려는 글은 생활에서 늘 겪는 일이어서 놓치기 쉽다.
‘쉬운 일 같지만 해보면 어렵다. 못할 것 같지만 시작하면 다 된다. 쉽게 보이는 일도 신중이 하고, 곤란한 일도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질 때 성공할 수 있다.’
우리가 가는 인생길에도 오르막과 내리막길이 있다. 그렇다고 계속 오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고, 내리막길이라고 해서 막장으로 가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오르막과 내리막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명하게 지혜롭게 주어진 삶을 걸어가는 태도이리라. 희망씨, 가슴에 새기는 한 줄 명언, p.264. 박성완, 24. 6. 11.
2.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13-21절)”을 읽었습니다. 성경에는 오늘 본문과 유사한 기적 이야기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두 아드님을 훌륭하게 키우신 저의 중학교 생물 선생님이 계셨는데, 둘째 아드님은 경희대 약대 학장을 지낸 분이고, 큰 아드님도 지방 대학에서 가르치신 분이십니다. 어느 해 겨울 시험공부를 하는 제게 방을 한 칸 내 주시고 가끔 저녁 식탁에도 초대해 주셨습니다. 식구들은 다 신앙생활을 했는데 유독 선생님만은 기독교에 매우 비판적이셨는데, 미국으로 이민을 가셔서는 교회 출석을 열심히 하셨다는 소식을 풍문으로 들었습니다. 공산권에서 지하교회를 십여 년간 섬기신 범브란트 목사님은 “단수인 인간은 없다. 모두 복수이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셨습니다. 사람구실을 할 때까지 우리는 수만 번의 누군가의 도움과 사랑을 받으며 자라고 살고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생물 선생님은 늘 저를 놀리는 재미가 있으셨나 봅니다. 하루는 식사를 마치고 제게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기적을 행하였을까? 생각해 보았느냐? 인간의 곤경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는 게 저의 대답이었습니다. 1차원적 대답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장에는 눈앞의 문제가 심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삶의 의미와 목적을 향해 눈을 뜨라는 것이 더 큰 대답이었던 것입니다. 왜 사는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가장 잘 사는 삶이란 무엇인지 말입니다.
지금부터 2천 년 전에는 배고프고 병든 사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배고픈 것이 창피한 일도 아니고, 아픈 것이 무슨 전생 운운할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2천년이 지난 오늘은 그렇지 않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만큼은 배고픈 사람이 없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아예 밥을 먹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을 이장님은 어느 집이 밥을 굶고 있는지 그걸 알아내려고 힘쓴다 하셨습니다. 예전같이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도 아니니, 밥을 먹는지 안 먹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합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먹기가 싫다는 것입니다. 자식에게 버림받은 사람이 무슨 밥맛이냐고 합니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이 살아서 무얼 하느냐는 겁니다. 외로움이었습니다. 병든 사람들도 예전보다 늘었으면 늘었지 줄지 않았다 합니다. 보건소에서 호구방문을 하면서 질병 데이터를 갖고 있다 합니다. 얼마든지 전화만하면 보건소 간호사 선생님이 방문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췄다 합니다. 그런데도 치료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오래 사는 것이 소망이 아니라, 지옥이라고 합니다. 살고 싶은 세상이 아니라, 살기 싫은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합니다. 예전에는 입은 옷 그대로 교회에 갈 수 있었는데 요즘은 눈치가보여서 교회 가는 것도 꺼려진다 합니다. 예수님도 허름한 자신을 반기지 않을 것 같다 합니다. 배부른 소리, 넋 나간 소리일까요? 배부르고 편리하며 화려한 천국도 싫다합니다. 이웃이 없는 그런 곳이라면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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