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453(2024. 7. 8. 월요일).

시편 시 72:15-16.

찬송 53.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결정을 할 때, 가장 좋은 선택은 올바른 일을 하는 것이고, 차선의 선택은 잘못된 일을 하는 것이며, 최악의 선택은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이다.” 곱씹어 볼 명언이다. 이렇게 말한 사람은 미국의 대통령직을 3번씩이나 수행하였던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1882130~1945412)이었다.

    윤동주의 <서시>가 떠오르는 것은 낯설지가 않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로 시작하는데, 그는 최선의 삶을 선택하며 살겠다는 의지가 엿보였으니 말이다. 박성완, 24. 7. 7.

 

2. “성전 뜰에서 쫓겨난 상인들(12-17)”저주받은 무화과나무(18-22)”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째 단락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성전은 제사를 드리는 성소였습니다. 이런 제사는 대부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거나 회복 또는 찬양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밖에 자신의 신앙이나 회개 또는 경외심 등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제사에 사용되는 제물은 동물과 식물이었는데, 속죄제나 속건제 번제와 화목제는 동물을 죽여 그 피를 제단에 뿌리는 것이었는데, 이는 인간의 생명을 대신하는 의미로 죄의 가공할 위력을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성전 뜰에서 쫓겨난 장사꾼들의 얘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파는 장사꾼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불리리라 했는데, 너희는 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 고 나무라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환전상이란, 성전세인 반세겔을 바꿔야 하는데, 시중에서는 통용되는 화폐가 아니어서 성전 뜰에서만 바꿀 수밖에 없는 일이고, 비둘기를 파는 장사꾼들이란 제물로 바칠 비둘기나 기타 양과 염소 등을 끌고 오느라 기진해 버린 비쩍 마른 짐승이 아니라 살이 통통한 우량한 제물을 드리는 게 바른 예법이라며 성전 뜰에서 거래를 하느라 야단법석을 떨었던 것입니다.

    성전의 제사에 대한 그들의 열정이 결국은 시중 장터에서나 벌어지는 고성(高聲)과 욕설이 들리게 한 것이었습니다.

이후에 성전 뜰 안에 있던 소경들과 절름발이들이 주님 앞으로 나오자 그들을 고쳐주셨는데, 이를 바라보며 못마땅하게 여긴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아이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노래하는 아이들을 보고 화를 내면서 이 아이들이 하는 말이 들리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호산나, 우리를 살려주십시오! 라는 말을 하고 있으니 가당키나 하는 말이냐고 되묻고 있었던 것입니다. 메시야가 오실 때 해야 할 말을 함부로 외치고 있는 이 어린 아이들을 가만히 보고 있겠느냐고 따지듯 하는 말이었습니다. 당시의 사제들이나 율법학자들은 예수를 사이비 종교인쯤으로 밖에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님은 시편 8:2을 인용하시면 대답하신 것입니다. “들리고말고!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주를 찬양하리라, 한 시편의 말씀을 읽어본 일이 없느냐?”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 베다니로 향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에서 본말/本末이 전도/顚倒되다는 의미를 떠올립니다. 성전에서 하나님께 드릴 제사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래서 하나님의 은총을 기리고 감사하고 정성을 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재물을 구하는 일에 헛된 열심을 내고 있다는 주님의 따끔한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런 예는 여러 국면에서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할 예배 보다는, 예배당에 갈 옷차림에 더 시간과 열정을 뺏기는 것 등이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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