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454(2024. 7. 9. 화요일).

시편 시 72:17-19.

찬송 239.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이 옳은가?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 옳은가? 이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한 사람이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P. Valarey(1871.10-1945.7)이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용기를 내어서 그대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그대는 사는 대로 살게 된다(If you don’t live the way you think, you’ll think the way you live.)”

    많은 사람들은 삶이 중요하고 우선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삶보다 생각이 더 중요하고 우선임을 알아야 한다.

박성완, 24. 7. 8. 치과 진료와 방사선 치료를 마친 후의 생각.

 

2. “예수의 권한에 대한 질문(23-27)”두 아들의 비유(28-32)”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입니다. 자녀를 키워본 분들이라면, 자녀들이란 부모님 말을 안 듣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러니까 부모님에게 매를 맞거나 꾸중을 듣지 않고 자라기는 힘들다는 말입니다. 하루는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성완아, 너는 아버지에게 매를 맞지 않고 자란 아이다. 그래서 늘 고맙게 생각한다.” 고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버지에게 크게 꾸중을 들었습니다. 무엇 때문인지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데, 그날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집을 맴돌고 있었습니다. 해가 넘어가고 집에 불이 켜졌습니다. 식구들이 저를 찾아서 밖으로 들락거리는 듯 했습니다. 그때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제가 없는 우리 가족을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꾸중한 것을 후회하셨고, 어머니는 울음을 터트리셨습니다. 형과 누님 그리고 동생들이 소리를 질러 제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래서 저녁 식사가 끝난 두어 시간 지나서 집에 들어갔습니다. 식구들은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아버지만 들어왔냐고 말씀하신 후 사랑방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단 한 번도 아버지 어머니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두 아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첫째 아들은 언제나 모범적인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말씀을 듣겠노라 대답을 하곤 포도원으로 가지 않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말썽꾸러기 둘째 아들은 반항 끼를 부리더니 뉘우치고는 포도원으로 들어가 일을 한 것입니다. 주님은 이 비유를 제자들에게 교육 자료로 삼으신 것입니다. 누가 아버지의 뜻을 따른 아들이냐고 말입니다. 당연히 둘째 아들이라 대답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는 놀랍게도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유대인들을 첫째 아들의 역할로 등장시키셨고, 둘째 아들은 세리와 창녀들의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교점이 너무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모범적이고 표준이 될 만한 인간상으로 온 세상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유대인들이, 가장 추하고 난잡해서 입에도 담을 수 없는 세리와 창녀에 비겼으니 말입니다. 그 위대한 유대인들이 최악의 죄인들보다 못한 이방인의 존재로 추락해 버렸으니 말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모든 기득권과 영광을 누려오던 선민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세리와 창녀보다 못한 자리로 내려앉을 수 있다는 파격적인 평가는 세상 끝날에 일어날 수 있다는 예표라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지옥은 없다>는 책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고 합니다. 제멋대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라는 바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경에서 지옥과 천국을 주님께서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속임수를 쓰고 있습니다. 거짓말쟁이들입니다. 천국과 지옥이 없는 삶이라면, 팔복의 말씀들이나, 천국을 비유하신 말씀들은 누구의 말씀일까요?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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