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474(2024. 7. 29. 월요일).

시편 75:4-7.

찬송 483.

 

1.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의 저자 독일의 신부 안셀름 그륀(1945-)은 독일 베네딕토 수도회의 신부로 한 때 유행하였던 소확행(小確幸)의 뿌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 분이라 할 수 있다. 그륀은 멀리 있는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일상 속에서 기쁨을 찾을 때, 인생의 참된 의미를 얻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아울러 행복은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삶이 고단한 우리를 위로하고 있다. 그가 남긴 명언 가운데는 행복이란 항상 선물이며, 언제나 기적이다.” 말이 있다. 가령 기적은 빗물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비는 시시때때로 하늘에서 내리지만, 자기 그릇에 담지 않으면 모두 밖으로 흘러가 버리고 만다. 그릇을 준비해야만 빗물을 받을 수 있고, <중략> 사람은 누구나 기적을 바라지만, 그 기적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기적은 그냥 어느 날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기적은 항상 그것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을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다. 우리는 기적이 우리를 비켜가지 않도록 잘 준비하고 있다가 손을 뻗어 잡아야 한다.                희망씨, 가슴에 새기는 한 줄 명언, p.162.

 

2. “겟세마니에서의 기도(36-46)”을 읽었습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기도생활이라는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생활에 대해서 그들의 신앙생활을 평가하기도 합니다. 특별히 예루살렘을 신앙의 뿌리로 두고 있는 3대 종교, 유대교, 기독교, 모슬림교는 기도생활을 강조하는 종교들입니다. 심지어 개신교의 목회자 대부분은 기도생활을 신앙생활의 첫째가는 계율도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떤 기도생활이 성경적이고, 기독교적인가에 대해서는 매우 소홀이 가르치는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우리 기독교의 기도생활이란 무당의 기도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기도자의 소원성취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연 우리가 힘써야 할 기도생활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깊이 묵상할 뿐 아니라, 바른 기도생활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 주님께서 겟세마니에서의 기도는 매우 귀중한 패러다임(범례)라고 하겠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산 밑에 머물게 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을 데리고 산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또 세 제자들을 먼발치에 떨어져 있게 하고 홀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편의상 예수님의 기도하심을 몇 단계로 분류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기도는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나아가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 좋은 시간과 장소는 기도자가 혼자일 때입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매우 좋은 환경입니다. 진실성이나 유식한 체나, 경건한 흉내를 낼 필요가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 고스란히 보여드릴 수가 있습니다.

    둘째는 오직 진심으로 하나님께 말씀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오염시킨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숨기거나 감출 것이 많아졌습니다. 기도까지도 거짓말에 길들어 버린 것입니다. 자신과 가족의 형편과 처지를 뻔히 알면서도 여전히 자랑할 구석이 있는 줄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등생을 원하고 좋은 회사에 취업하도록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입니다. 마치 공부는 하지 않고 놀러만 다니는 아이가 100점을 맞게 해달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솔직한 마음으로 기도하지 않는 것을 하나님께서 들으실 귀가 있을까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셋째로 주님은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미래와 생명을 맡기십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기도의 최고 정점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일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짊어지고 가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모든 멍에들까지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일입니다. 어떻습니까? 1시간을 기도하는데, 58분까지 내 뜻대로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억지를 부리더니, 마지막 1-2분에 와서 주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하면, 그 기도의 진정성을 누가 인정해 줄 수 있을까요? 마음과 생각은 황금과 출세에 가 있는데, 그래서 그 당위성을 주저리주저리 읊어대더니, 마지막 1-2분에만 주님의 뜻대로 되게 해달라고 하면, 여러분은 그 말에 속으시겠습니까? 이런 것이 바로 거짓된 기도이고, 진정성이 없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는 데는 우리들도 동참해야 할 부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깊이 묵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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