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471(2024. 7. 26. 금요일).

시편 74:19-21.

찬송 442.

 

1.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조선조 정조 때 시인 강이천(姜彛天, 1769-1801)은 소품 작가로 이름을 날렸는데, 열다섯 가지 짧은 이야기를 엮은 이화관총화/梨花館叢話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사대부 집안에 종이하나 있었는데, 말을 잘 다루었다. 그가 일찍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노둔한 말이나 준마다 할 것 없이 말은 사람이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절뚝거리는 병에 걸리지 않은 말이라면 걸음이 느려 바탕이 좋지 않다 해도 내가 한번 다루면 빨리 달려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그 기술을 물으니 이렇게 말했다. ‘달리는 것은 말의 본성이다. 말 가운데 제 욕심만 도모하는 말이 제일 좋지 않은 종류인데, 지혜로운 자는 그 말을 제압하여 고삐를 잡아 제멋대로 날뛰지 못하게 한다. 나는 오로지 말을 엄하게 부리므로 말이 제 욕심을 부릴 수 없을 뿐이다.’ 그의 말을 듣고 나는 생각했다. ‘그의 생각을 백성을 부리는데 적용할 수 있겠다. 선왕이 예법과 형벌을 제정한 이유가 어찌 허황한 것이랴.’”     안대회, 고전 산문 산책, pp.466-467.

 

2. “최후의 만찬(17-30)”을 읽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해방 기념일과 같은 무교절이 시작되는 첫날 저녁, 만찬을 특별하게 지내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유월절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날로, 그날이 시작되는 저녁 시간에, 누룩 없는 떡과 양을 잡아먹는 전통이 있으며, 단 하루만이 유월절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날부터 7일간 누룩 없는 빵을 먹는 것을 무교절이라 부릅니다. 그러니까 무교절의 첫날이 유월절인 셈입니다. 유대인들의 명절 지키기는 그냥 어떤 행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조상들이 행하였던 그 역사적 방법대로 따라서 행하는 특징이 있었던 것입니다. 초막절에는 안락한 집에서 나와 거친 자갈과 모래밭에 초막을 짓고 7일간 정해진 떡과 물을 마시며 지내듯 말입니다. 예수님의 일행도 무교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 안의 어느 집을 찾아가 무교절(유월절) 식탁 앞에 앉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 주님은 떡과 잔을 나누시면서 자신을 배신하고 팔아먹을 자가 제자들 중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서로가 자신이 아니기를 바라며 물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떡과 잔을 나누시면서 이른바 성찬 제정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받아 마시라 이것은 내 몸이다. 받아 마시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계약의 피다. 이제부터 아버지 나라에서 너희와 함께 새 포도주를 마실 때까지 결코 포도로 빚은 것을 마시지 않겠다.” 그리고 찬미하며 올리브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이 본문에서 우리는 두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주님 일행의 돈주머니를 맡고 있을 만큼 신뢰가 두터운 가룟인 유다가 어찌하여 배신자가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른바 최후의 만찬을 나눈 주님의 일행이 찬미를 부르며 감람산으로 올라갔다가고 하는 대목입니다. 최후의 만찬을 느낀 사람이라면 어떻게 찬미를 부를 수 있었느냐는 물음입니다. 첫 번째 질문, 가장 신임을 받고 있었던 제자 가룟인 유다가 배신자가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일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그 단서가 다른 평행귀인 눅 22:3에 나온다는 것입니다. 바로 사탄이 가룟인 유다에게 들어가게 되자 자신의 스승을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팔 계획을 세우고 진행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타락하는 장면에서도 동일하게 등장합니다(3:1-7). 문제는 사탄에게 우리의 마음과 몸을 다 빼앗길 정도로 그들의 유혹에 넘어가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유혹이라는 말은 상대방을 비참하게 망하도록 하기 위해서 시도하는 모든 악행을 말합니다. 사탄이 가장 잘 하는 것이 유혹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마지막 만찬임을 눈치 챘음에도 불구하고 찬미하며 감람산으로 올라가는 장면입니다. 다시 말하면 유월절 만찬의 말씀과 분위기를 제자들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참으로 안타깝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제자들과 3년을 동고동락하신 것이 억울하기까지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 자식 간에도, 한 사람은 영원히 헤어질 것을 내다보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현실만 바라보고 있을 뿐인 것은 여전히 계속되는 현실이라는 말도 됩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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