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685호(2025. 2. 25. 화요일).
시편 107:4-6.
찬송 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삶이 고통이라는 것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모든 주요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가르치는 내용이다. 구체적인 표현이 다를 뿐이다. 불교는 그런 교리를 직접 가르치고, 기독교는 십자가로 보여준다. 유대인은 오랫동안 고통을 견뎌온 조상들의 행적을 기리며 기억한다. 삶이 고통이라는 생각이 보편적인 종교적 교리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나약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쉽게 상처입고 잘 망가진다. 누구도 노화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생에서는 이런 암울한 일이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제대로 살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은 당연하다.” 조던 피터슨, <12가지 인생의 법칙>, pp. 464-465.
2. “룻과 나오미2(15-22절)”을 읽었습니다. 류시화 시인의 잠언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시인이 말하는 그 때란 어느 때를 가리키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가장 힘든 때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생활을 하던 시절이 가장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시대가 아니었을까 회상합니다. 도무지 앞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지금 배우고 있는 과목이 훗날 내게 무슨 도움이 될까 전혀 감조차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삶에서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가령 첫 삶의 터전이 되었던 북아현동 깊숙이 자리 잡은 <인우학사>에서 방을 데울 연탄난로를 개인이 사서 연탄불을 지펴야 할 때는 더욱 그랬습니다. 이곳에서 묵을 날이 몇 날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눠 부담할 수 있는 룸메이트도 없을 때 말입니다. 1970년 2-4월은 혹독한 추위로 밤새 떨었던 추억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때 맛보았던 식당이 있는 빌딩 벽에서 맞았던 아침 햇살의 고마움은 평생을 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불확실성을 가슴에 가득 안고 살아갈 때, 우리가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생각하는 결단 말입니다. 그 다음에 무엇이 불어 닥칠지 전혀 알 수 없을지라도 최선의 길을 고집하는 자세 말입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가장 훌륭한 답이 된다고 말입니다. 어쩌면 이런 것은 하나님께서도 가르쳐 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젖먹이 어린 아이로 살아가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우리가 만일 룻의 처지였다고 가정한다면, 여러분은 동서/同壻인 오르바처럼 개가/改嫁하여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친정을 택하는 것이 최선일까요? 아니면 혼자인 시모를 모시고 그분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동행하며 일생을 살겠다 택하는 것이 최선일까요? 그 대답은 저로써는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의 목표가 있고, 생각이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쪽을 택하든 그 책임을 오롯이 자신이 짊어지면 무방한 것이니 말입니다. 롯은 후자를 택했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겠으며,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겠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제 겨레요. 어머님의 하나님이 제 하나님이십니다. 어머님이 눈 감으시는 곳에서 저도 눈을 감고, 어머님 곁에 같이 묻히렵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안 됩니다. 죽음 밖에는 아무도 저를 어머님에게서 떼어 내지 못합니다.”<공동번역 성경>. 그렇게 해서 시모 나오미와 둘째 며느리 룻은 베들레헴에 도착합니다.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룻은 시모와 일생을 함께 하겠다 결심하고 실천한 것일까? 라고 말입니다. 몇 가지 가능한 대답이 있습니다. 첫째는 결혼의 의미를 시모에게서 잘 배운 때문일 수 있습니다. 물론 아랍 세계에서도 이런 전통이 있었다고 합니다. 둘째는 삶의 의미를 바꾸고 싶지 않았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녀가 이방인 남편 기룐과 일생을 같이하겠다 결심하였을 때, 그녀에게 다른 인생이란 추호도 생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자신의 공로로 돌리곤 합니다. 룻이 새로운 삶을 택하지 않고 과부인 시모를 따라 살겠다는 의지와 결심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을 것인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맡기는 순수한 신앙적 결단이었을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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