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682호(2025. 2. 22. 토요일).
시편 106:44-45.
찬송 6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곳에서나 절실하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만일 당신이 도움을 주었는데도 상대방이 당신을 공격한다면, 그 공격은 당신을 향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처지에 화가 났거나 무력함과 싸우는 중일 것이다. 그 사람의 분노를 막지 말라. 당신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다. 이제 당신이 도울 차례다.”
켄트 케이스, 문채원역, <그래도>, p.99.
2. “그리스도는 누구의 자손인가?(35-37절)”, “율법학자들을 조심하라(38-40절)” 그리고 “과부의 헌금(41-44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셋째 단락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헌금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첫 번째 오해는 나라에 세금을 내고 살고 있는데 하나님께 세금을 낼 필요가 있느냐는 것과, 내고 싶으면 내고 내기 싫으면 내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둘째 오해는 헌금을 강요하듯 할 수 없지 않으냐? 자발적으로 하는 헌금만이 올바른 헌금이라는 생각입니다. 첫째 오해는 평신도들의 입장이고, 둘째 오해는 목회자들의 오해입니다. 세금의 본래 목적은 국가나 지방정부 그리고 임의 단체에 이르기까지 구성원들이 일정한 세금과 회비를 냄으로 그 단체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모든 국민에게 납세의 의무를 지우는 것은, 국민의 세금으로 국민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국방, 치안 질서, 교육시설, 경제개발 등과 같은 나라의 큰 공공사업을 위해 다양하게 쓰이고 있으며, 기후 위기 대응 등 국가 간의 협력 사업이나, 대외 구호 원조 사업 등에 쓰이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정한 수입이 있는 국민에게 원천징수하는 갑근세나 재산세 교육세 등이 강제로 징수하고 불응할 때는 각종 제재조치를 취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기독교회는 성경의 정신을 따라 하나님이 주신 세상에서 살고 있는 한 하나님이 주신 만물을 사용하고 있으며 당연히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는 의미로 헌금을 드려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가령 11조는 의무헌금이고, 감사의 사건이 있을 때마다 감사헌금을 드리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의무감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성전 입구에 놓여 있던 헌금궤에 헌금을 넣는 부자들과 과부의 모습을 관찰하신 주님께서 부자의 많은 돈과 과부의 동전 두 닢에 대해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헌금은 그 액수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헌금에 대한 이해와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에서 헌금에 대한 우리 주님의 가르침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우선 흥미로운 것은 부자와 가난한 과부가 드린 헌금 액수를 예수께서 어떻게 알았는지에 대한 궁금증입니다. 그러니까 부자는 여럿이 와서 많은 돈을 넣었다고 했고, 과부는 겨우 두 렙돈을 넣었다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 해석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예루살렘 성전의 많은 헌금 함 중에서 여인들의 뜰 가까운 곳에는 13개의 헌금함이 있는데, 그 중에서 자진해서 헌금을 드리는 곳이 있는데, 여기에 드린 헌금은 소제로 바치는 제물에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국제주석 마가복음의 주석자 그닐카는 신약 주석가 Billerbeck을 인용하며, 당시에는 한 사제가 헌금을 받으며 헌금액을 알렸기 때문에 주변에 있는 사람이나 관찰자는 이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래서 부자는 공개적으로 밝힌 헌금 액수 때문에 더 큰 자부심을 느꼈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서 헌금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에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부자는 비록 많은 헌금을 드렸을지라도 자신의 넉넉함 중에서 드린 것이라는 것과, 과부는 가난하고 구차한 살림살이 속에서 어쩌면 전 재산과 같은 헌금을 드렸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부자의 헌금하는 자세에서는 일상적이고 당연한 신앙적인 자세가 풍겨지는데 반해서, 과부는 자신의 삶의 많은 부분을 드려야 하는 때문에 그만큼의 절실함과 간절함이 묻어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하면 부자에게서는 마치 자신의 삶에서 차지하는 하나님의 비중은 크고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반면에, 과부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이 그녀의 삶을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무겁게 느껴졌다는 것입니다. 지금보다 젊은 날에 저 역시도 오지랖이 넓은 체 했는지, 어려운 이웃을 보면 가진 돈을 긁어서 도우려 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아내 몰래 그런 일을 했었는데, 솔직히 훗날 후회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개인적으로가 아니라, 공개적으로 관리하는 구호 기관을 선호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참된 구호나 헌금은 최선을 다하는 마음과 자세라는 것을 주님은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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