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5042(2015. 3. 7. 토요일).

시편 시 104:28-30.

찬송 241.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상대방의 의도를 아직 모르겠지만, 뒤쪽에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한 뒤에, 자신의 생각을 말했습니다. 이렇게 바쁜 곳에서는 뒷사람들을 위해 표주고 받는 일만 최대한 빨리하는 게 뒷사람들을 위해 최고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낯선 기차역에서의 여행자는 원래 마음이 급하고 여유가 없는 법이다. 그러자 그가 면박 줄 생각은 아니었는지, 웃으면서 말합니다. 그럴수록 여유 있는 마음이 중요하다. 나는 당신과 내 아침이 모두 행복하길 바란다. 그리고는 천천히 발매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외국에서 문화 차이나 생각 차이로 어떤 지적을 받는 건 썩 유쾌하지는 않았지요. 하지만 기차에 오르도록 내내 그의 당당한 여유가 부럽고, 자신의 여유 없는 습관이 안타까웠습니다. 문득 유럽의 한 관광도시에 붙어져 있다는 유명한 가격표도 떠올랐습니다. 그 가격표엔 이렇게 써 있다고 하지요. “커피라고 말하면, 커피 한잔에 7유로”, “커피 주세요. 라고 말하면, 4유로”, “안녕하세요. 커피 주세요. 라고 말하면, 2유로.” 이렇게 써 있다고 합니다. 존댓말이 우리처럼 복잡한 나라든 그렇지 않은 나라든, 지구 상 어디에나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말, 태도가 있는 거겠지요. 평범한 인사 한 마디도 상대에겐 친절이자 자신에게는 느긋한 여유가 될 수 있다는 것도 그날 깨달았습니다. 돌아온 뒤부터 안녕하세요. 인사부터 건네는 습관이 생겼는데, 덕분에 마음에 한결 여유가 생긴 것 같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41215일 방송>b.

 

2. 유대인 뿐 아니라, 기독교인들 가운데서도 여전히 율법의 의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으로써 솔직한 마음일지 모릅니다. 가난한 젊은이를 도와주고, 병든 사람들을 찾아가 위로해 주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에게 친구가 되어주는 일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런 일을 했을 때, 할 때 그리고 하려고 할 때, 스스로 행복감을 느끼고 왠지 모를 거룩해 지는 느낌마저 든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렇듯 흔치 않은 높은 도덕성을 실행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을 뿐이라고 일갈합니다. 율법의 의는 상대적인 의일 뿐, 여전히 동일한 율법에 의해서 정죄되고 심판에 회부될 뿐이라고 말입니다. 율법을 온전히 만족시킬만한 의로운 생각이나 행동은 불가능한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비장의 무기를 꺼내놓습니다. 그것을 율법이 아닌 하나님이 감추어 둔 <하나님의 의> 라고 말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의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기를 쓰고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획득하는 율법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구원의 길인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에게 허락되는 하나님의 의를 얻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의는 전혀 뜻밖의 선물이었고, 어떤 대가로 치르지 않은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에서 온 것이라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율법과 하나님의 의인 복음의 관계를 분명히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가장 인상적으로 표현한 사람이 있습니다. 율법으로 설교를 시작하라. 그러나 반드시 복음으로 설교를 끝내라는 루터의 말입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죄를 알게 하고 회개하게 만드는 중요한 기능을 하지만, 그런 불쌍한 죄인을 다시 일어서게 하고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 안에서 소망을 가지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인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사실입니다. 결코 율법을 폐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며, 복음 외에 다른 희망이 없음도 그 이유라고 말입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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