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학은 부전공으로 택했던 것인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신약을 전공한 것 보다 더 중요한 과목이 되었다 생각합니다.
사실 대학에서나 대중 강연에서나 신약을 더 많이 얘기했지만,
가장 많은 질문을 받고 있는 것은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 많은 질문중 하나는 예배를 아름답게 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물음이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쓴 예배학 책 서문에서 힌트를 얻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질문, 그것은 호기심의 결과물이고 또 배움에 발을 담그는 중요한 첫 걸음인 때문입니다.
저의 대답은 매우 간단합니다.
질문을 진지하게 시작해 보라고 말입니다.
은퇴후에 한 곳 교회를 다니지 않고,
다양한 교회를 출석하는데 저에게는 매우 유익한 시간들을 갖고 있습니다.
우선 예배의 다양성에서 배우고 느끼고 깨우치는 것들이 많습니다.
대부분은 이렇게 예배를 드리면 안 되는데 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갖게 합니다.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가 깊은 생각없이 예배를 주관하고 있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첫째 원인은 온통 설교 한 편에만 매달린 현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예배가 전체적으로 통일성도 없고 산만하고 위엄과 장중함을 찾을 수 없습니다.
설교가 돋보이기 위해서라도 예배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예배 순서 하나하나에 대한 질문도 진지했으면 좋았겠다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 한 예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루터교회 등 예배 의식을 갖고 있는 전통 교회들에서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라는 문구를 자주 사용합니다.
물론 성호 긋기를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예배를 시작하거나, 설교를 시작할 때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매우 중요한 질문을 해야 합니다.
왜 예배를 시작할 때, 설교를 시작할 때 삼위 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시작할까? 하고 말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삼위요 일체이신 하나님의 은총 아래서 시작하는 것임을 밝히는 것입니다.
설교 역시 삼위요 일체이신 하나님의 은총과 긍휼 안에서 시작하는 것임을 밝히는 것입니다.
만일 이런 확고한 정신을 가진 예배 인도자라고 한다면
삼위요 일체이신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을 돌리려는 중심점을 가져야 마땅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배 내용 중에,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설교 내용중에,
자신을 내세우려는 일체의 어리석은 시도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만,
제가 어느 주일 아침, 몸이 아파서 집에서 TV로 여러 곳 교회 예배 실황을 통해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화가 나서 도무지 참을 수 없는 몇 교회는 대형교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예배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교회 목사를 예배하는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배의 주인이 바로 그 교회 담임목사였기 때문입니다.
예배 순서가 있지만 자기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합니다.
부흥회라면 전도나 교육을 위한 집회니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신 예배에서는 절대로 그럴 수가 없습니다.
온갖 신소리에 자기 자랑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성가대의 찬양도 자기를 위한 노래가 되어 버린지 오랩니다.
잘했느니 못했느니 평가도 서슴치 않고 나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이며,
그 하나님과 함께 나누는 예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성호를 긋는 일에 대해서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방향을 어디로 해야 하느냐는 물음이 그것입니다.
제단을 향하느냐? 아니면 회중을 향하느냐? 고 말입니다.
참 좋은 질문입니다.
그 대답을 드리기에 앞서서 예배는 두 가지 형식을 가진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임재를 말하는 성례전적인 요소입니다.
예배 내용 중에서 하나님께서 예배자들에게 오시는 요소를 의미합니다.
성경봉독이나 설교 성찬 축복선언 등이 그런 것들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예배자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요소 즉 제사적인 요소입니다.
찬송, 기도, 감사 등입니다.
무엇을 하든 성례전적인 요소일 때는 회중을 향하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께서 회중을 향해서 말씀하시고 은총을 베푸시는 때문입니다.
방향을 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상징성을 띄고 있습니다.
지금 하시는 말씀이나 성경봉독은 바로 회중인 우리를 향해서 하시는 것이구나 하고 느끼도록 말입니다.
그런가하면, 무엇을 하든 제사적인 요소를 진행할 때는 제단을 향하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빌기 위해서, 그리고 받은 은총에 감사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예배 인도자가 제단을 향하고 있다면,
회중은 지금 예배하는 내용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적인 것이구나 느끼도록 말입니다.
예배 인도자의 방향만 봐도, 지금 진행중인 예배가 하나님께서 회중에게 임재하시는 내용인지,
아니면 회중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내용인지를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제 대답을 드리겠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를 제단으로 향해서 말씀했다고 하면 이것은 제사적인 내용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회중을 향해서 했다면 이것은 성례전적인 내용입니다.
예배 인도자가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흠향해 주시기를 비는 마음을 가졌다면
제단을 향해야 옳습니다.
그러나 그가 삼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넘치는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주고 계십니다 라는 마음이라면
회중을 향해야 옳습니다.
예배 인도자는 스스로 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어느 쪽인가?
언제나 가장 위험하고 어리석은 것은 무지입니다.
모르니까 용감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워야 할 예배를 망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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