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5147(2015. 6. 20. 토요일).

시편 시 128:1-6.

찬송 539.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벌어졌던 초기 올림픽에서, 도약 종목으로 유일하게 인정됐던 종목은 멀리 뛰기 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대 올림픽에서의 멀리 뛰기는 지금의 멀리뛰기와는 좀 달랐습니다. 그 때 멀리뛰기 선수들은 양손에 헬테레스 라는 돌을 들고 뛰었지요. 헬테레스는 꽤 묵직한 돌이었습니다. 누군가의 묘사에 의하면, 옛날 식 전화기 수화기처럼 생긴 돌이었지요. 오늘날로 치면 덤뱅이 같은 것이랄까요? 고대 멀리뛰기 선수들이 굳이 양손에 그런 헬테레스 돌을 들고 멀리뛰기를 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이유를 두 가지만 꼽는다면, 첫째는 인간의 체력에 대한 강력한 도전의지 때문이었지요. 둘째는 멀리 뛰기 핵심인 도약과 착지의 조화로운 균형을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헬테레스 돌을 통해서도,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강하면서도 균형 잡힌 신체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간접적으로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특별한 의미를 지녔던 헬테레스가 현대로 오면서 없어진 건, 실은 없어진 게 아닙니다. 오히려 멀리 뛰기 운동이, 높이 뛰기며 원반던지기 같은 운동들로, 더 세분화되고 더 많아지면서, 헬테레스도 좀 변형돼서 그 종목들이 여전히 활용되는 셈입니다. 헬테레스 돌이 일깨우는 균형이, 그 국어교사의 간절한 바램에서처럼, 우리들의 학교 교실과 운동장에서도 되찾아지고, 또 더 잘 이루어졌으면. 메르스 파동의 한 주일을 보내면서 새삼 생각해 봅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5613일 방송>b.

 

2.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광야 40년은, 역사에서는 처음 나타난 놀랍고 위대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애급왕 바로 앞에서 행한 일들과, 광야 생활 40년 동안 일어났던 수많은 이적과 기사(奇事)들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들과 맺었던 약속을 이행하는 일이었고, 이런 약속을 통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 분이시며, 신실하신 분이신가를 믿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본문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광야 40년 동안 옷이 해어지지 아니하고, 발의 신이 헤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기적으로 이어진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하나님을 참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는 근거를 만드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 광야 40년을 경험한 사람 뿐 아니라, 그 역사적 사실을 배우고 익힌 그들의 후손들은 하나님을 신뢰할 근거를 확보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믿음에 대해서 도박과 같다는 표현을 쓰기도 듣기도 합니다. 믿음은 너무 막연하고 그래서 때론 황당한 것처럼 생각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말하는 것처럼, 끝도 없어 보이는 시련의 돌 굴리기를 계속해야 하는 우리들로써는 더 이상 믿음을 붙잡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광야 40년에 일어났던 하나님의 역사 참여는 새로운 희망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비록 당장 시련이 사라지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가 믿는 것은 어떤 과거의 기적들을 행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하는 것만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시고 이 아름다운 세상을 맡겨주시며, 친히 돌보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인격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곧 섭리하시고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의 인격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인격이 광야 40년을 통해서 분명히 증명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말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런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아멘.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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