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5144호(2015. 6. 17. 수요일).
시편 시 126:1-3.
찬송 410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말했다. “피아노 연주란 건반과 관객의 영혼을 동시에 누름으로써 소리를 만들어 내는 방법이다.” 우리가 들은 최초의 피아노 연주는 대부분 담장 넘어 어디선가 들려오던 소리가 아니었을까요? 어린 귀에도 그 소리는 지금까지 들었던 수많은 소리들과 구별됐습니다. 몸에서 귀가 저 혼자 뚝 떨어져, 소리 나는 곳으로 걸어가는 것 같았고, 숨을 쉴 때마다 방금 들은 음이 사라지고, 새로운 음이 나타났습니다. 햇살아래 옅은 먼지가 둥둥 떠다니길래, 손을 내밀어 먼지를 움켜쥐었지만, 움킨 손을 폈을 땐 빈손이었습니다. 그 때 우리가 들은 소리는 무엇이었을까요? 모든 악기는 예외 없이 인간의 몸을 거쳐 소리를 냅니다. 타악기와 현악기는 팔과 손의 동작을 거치고, 관악기는 들숨과 날숨을 거칩니다. 이처럼 악기는 인간의 몸이 아니고서는 소리 낼 수 없지만, 인간의 몸 역시 악기가 아니고서는, 그와 같은 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이렇게 몸과 악기가 만나 하나의 음이 태어나고, 태어나는 순간 사라집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음이 태어납니다. 음의 생성과 소멸의 순환, 이게 선율입니다. 선율이 모두 끝나면 인간의 몸에도 악기에도 소리가 남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것도 남지 않았을까요? “피아노 연주란 건반과 관객의 영혼을 동시에 주름으로써 소리를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미국의 작가 앰브로스 비어서가 한 말입니다. 인간의 몸과 악기가 만나 누군가의 영혼을 눌렀다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그 들리지도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흔적의 힘으로, 하루를 너끈히 살아내기도 합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5년 6월 9일 방송>
2. 많은 기독교인들 가운데서도 윤리 도덕적인 것을 신앙생활의 중심 주제인 것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 결과 인간중심적인 도덕적 삶을 강조하는 불교나 이슬람과 같은 타종교에 대해서,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그 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우리 기독자들은, 우리들 신앙의 뿌리이며, 우리가 읽는 성경이 가르치는 점을 분명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겠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윤리를 무시하지 않지만, 윤리의 한계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윤리적 신앙만을 강조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산상수훈(마 5-7장)을 말씀하실 때, 인간 윤리의 실천적 한계를 분명히 지적하셨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만이 살인이 아니라,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 욕설까지도 살인에 이르게 한다고 말입니다. 남의 아내를 범하는 것만이 간음이 아니라, 여성에게나 남성에게 음욕을 품는 것 또한 간음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윤리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기독교 신앙의 진수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중심의 신앙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전폭적으로 동의하고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사랑하신다는 것과, 그들을 살리기 위해서 독생자를 구세주로 보내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 신앙이 그 어떤 인간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보다도 더 높은 가치를 가진다고 말입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만 사랑하라고,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을 의지하지 말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점을 가장 명확히 깨달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브라함을 비롯해서 모세와 다윗 등, 우리들 신앙의 모델들을 앞세워 살폈습니다. 그들이 위대한 것은 그들 자신의 윤리도덕적인 삶에 있었던 게 아니라, 죄인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고 의지했던 믿음 때문이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을 의로 간주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롭게 하시겠다면, 누구든 의로워질 수 있다는 믿음 말입니다. 사실 저와 여러분은 그 무엇을 가지고도 하나님 앞에 나갈 수가 없습니다만, 단 하나 하나님이 준비하신 구원의 길을 믿고 의지하고 따라가는 것이면 충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실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그렇게 제가 믿습니다. 아멘.
3. 역시 선배에게선 배울 것이 많았습니다. 나이를 헛먹는 법은 없는가 봅니다. 어른을 공경할 이유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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