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서는 상징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목자로, 인간을 양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상징어는 영적 의미를 파악하는데 도구일 뿐, 그 자체를 강조할 필요는 없습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는 절대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운명 공동체입니다. 예수님과 우리들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분명하게 밝혀 줍니다. 삶의 질(HDI)은 관계 지수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들과 혹은 어떤 일과 관계를 어떻게 맺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준 사람이 유대인 철학자 마틴 부버였습니다. 그는 <나와 너>, 그리고 <나와 그것>의 관계로 삶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와 너>의 관계는 인격적인데 반해, <나와 그것>은 비인격적이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문제는 인격적이어야 할 <나와 너>가, 비인격적인 <나와 그것>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나와 너>는 서로 존중받는 인격체인 때문에 대화를 매개로 조정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한 쪽이 자신의 힘으로 상대를 무시하는 비인격적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삶에는 서로 다른 것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가 그런 것들입니다. 이런 양면성은 삶의 축복이지 결코 재앙이 아닙니다. <나와 너>의 인격적 대화가 계속될 때 말입니다. 그러나 <나와 그것>으로 전락한다면, 모두가 비극으로 끝날 것입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는 <나와 너>의 인격적 대화가 있습니다. 목자와 양은 주종의 관계로 보이지만,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가 아닙니다. 양들에게 제 이름을 불러주는 때문입니다. 그리고 앞서가고 뒤따르며 삶을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둘 사이에 다른 낯선 이를 끼워 넣지 않습니다. 신뢰를 깨트리는 모험을 하지 않습니다. 둘 사이의 대화에 진지할 뿐, 다른 사람의 견해로 헷갈리게 하지 않습니다. 목자와 양은 모습과 역할은 달라도 운명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를 위해서 일하고 살아가고 섬기면서 존재합니다. 커피숍에서 마주앉은 젊은 한 쌍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은 오직 서로에게만 충실하고 있습니다. 잘 듣고, 쳐다보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서로에게 무엇이 도움이 될까만을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목자 예수님은 오직 양들인 우리만을 생각하고 계십니다. 우리 또한 예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아십니다. 우리 또한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선한 목자는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요한복음서 기자는 예수님을 대신하는 목자들에 대해서 혹평합니다. 그들은 절도요, 강도며, 그리고 삯군일 뿐이라고 말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에게서가 아니라 이런 강도들을 만난 후 실망하고 떠나갔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무리 고매한 선생이라고 해도 그는 인생의 선한 목자가 아닙니다. 아무리 인자하고 능력있는 목사님이라고 하더라도 그는 선한 목자가 될 수 없습니다.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른바 사람을 보지말고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라는 말의 뜻입니다. 물론 진실하고 선한 목자를 만나고 싶어 합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교황 요한 바오르 2세를 성인의 반열에 올려놓을 전망입니다. 그 분이 보통 사람보다는 출중한 신앙심과 생활을 보였을 수 있습니다만, 유일한 선한 목자가 아닙니다. 수많은 여성 신자들에게는 확신보다는 혼동을 안겨 주었다고 말하는 때문입니다. 선한 목자, 우리와 삶과 죽음을 함께 나눌 유일한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우리는 선한 목자 예수님만 따라 인생길을 즐겁고 자랑스럽게 걸어 가야하겠습니다. |
'주일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5.5.1. 부활절 여섯째 주일] 아름다운 고난의 삶. / 벧전 3:15-22. (0) | 2013.12.21 |
---|---|
[2005.4.24. 부활절 다섯째 주일]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는 / 사도행전 17:1-15. (0) | 2013.12.21 |
[2005.4.10. 부활절 셋째주일] 믿음과 소망의 근거. / 벧전 1:17-21. (0) | 2013.12.21 |
[2005.4.3. 부활절 둘째 주일] 죽음을 이기는 능력. / 행 2:14a. 22-32. (0) | 2013.12.21 |
[2005.3.27. 우리 주님의 부활절 주일] 갈릴리로 가라! / 마 28:1-10. (0) | 2013.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