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154장. 

  우리 주님의 부활절 아침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주님이 부활의 주님으로 다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절에 나눌 인사말입니다. 천사가 여자들에게 들려준 소식은 “갈릴리로 가라. 거기서 주님을 뵈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갈릴리로 가라 시는 뜻은 무엇입니까?

갈릴리는 복음의 씨를 뿌릴 자리입니다.

갈릴리는 옛날부터 주목받지 못한 변방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졌고 낙후된 농어촌 지역으로  가난에 찌든 노동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곳에 복음의 씨가 뿌려졌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갈릴리는 예수님의 첫 번째 일터였습니다. 이곳에서 하신 첫 설교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사야 61:2를 본문으로, “성령이 임하셨으니,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포로된 자와 눈먼 자에게, 그리고 눌린자에게 자유를 주는 말씀이 이루어졌다”(눅4:18). 부활의 주님이 가실 갈릴리는 여전히 복음을 선포할 자리 뿐 입니다. 제자들이 가야 할 곳 역시 또 다른 갈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런 갈릴리를 찾아서 독일의 루터교회 구스타프 목사님이나 영국의 토머스 목사님이 우리나라를 찾아오셨다고 믿습니다. 갈릴리는 지금도 여전히 생명의 복음이 선포되어야 할 중요한 곳이라는 뜻입니다. 

갈릴리에서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가 갈릴리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또 다른 깨달음을 갖게 합니다. 주님은 33년 생애 중 단 몇 주간을 제외하고는 갈릴리를 맴도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가장 바르게 살아가는 일이란, 다름 아닌 우리 주님의 삶과 가르침을 회상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어떤 형편, 어떤 처지에서도 주님과 말씀을 잘 기억하고 있다고 하면, 훌륭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갈릴리는 우리 주님의 생애와 교훈을 생생하게 일깨우기에 풍부한 자료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성지 순례자들은 예루살렘에서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벳세다 광야나 다볼 산, 가버나움 등은 무시하곤  합니다. 그 결과 예수님의 땀과 눈물, 그리고 사랑이 짙게 배어있는 예수님의 진정한 의미를 깨우치지 못하고 말아버린 셈이 됩니다. 

갈릴리로 가는 길, 지금 부활하신 주님을 찾는 길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천사의 대답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갈릴리로 가라!” 그렇다면 우리들이 가야 할 갈릴리는 어디입니까? 여러분의 갈릴리는 아직도 죽음의 골짜기에서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 갈릴리는 의외로 우리들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격려,  용서와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입니다. [희망의 경계]를 펴낸 프란시스 M. 라페는 "지구상  모든 사람들이 하루 3,000Cal를 섭취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곡물에도 불구하고 6분의 1에 해당되는 10억 명이나 많은 사람들이 기아상태에 있다.”고 고발합니다. 육신뿐만이 아니라, 정신적 영적으로 기아상태에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들이 찾고 만나야 할 갈릴리의 현장입니다. 여러분의 가족들이며, 여러분의 이웃들이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 갈릴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아들과 딸이 영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죽음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주님은 너를 사랑하신다. 네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시고 존중하신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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