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23년을 농촌에서 살았다.
그러니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농사 이야기는 많다.
그리고 볍씨 뿌리기에서 부터 감자씨 심기나 고구마 순 심기 등,
거의 대부분의 농사일을 거들기도 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생일 시절에는 가끔 똥장군도 지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사이비 농사꾼이었고, 짝퉁에 불과한 농사꾼이었다.
그래서 지금 시골에 내려와서 텃밭을 가꾸면서 새로 배우는 중이다.
동네 아저씨들을 만나면 시시콜콜 묻기도 하는데 영 시큰둥한 대답이다.
무슨 농사를 지으려고 하느냐는 눈치들이다.
주변에서까지 도움이 안 되니 마음이 흔들린다.
말이 좋아 친환경 농사를 짓는다 떠들어댔지만,
사실은 게을러서 그냥 방치해 둔 채로 농사를 지어온 것이었다.
그 결과 매년 폐농에 가까운 결과를 거두곤 했다.
마늘 농사는 한번 심어놓은 그것으로 기다렸다가 추수를 해 왔었고,
배추나 무 농사도 햇볕에 말라죽지 않을 수준에서 물주기를 했을 뿐이다.
그러니 마늘 씨알은 크다 만 어린애 처럼 비쩍 마른 것이어서 실속이 없고,
무는 어린애 주먹만 하게 크면 다 큰 것이고,
배추는 벌레들이 다 파먹어서 정말 홀쪽하고 초라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금년에는 양단간에 결판을 낼 생각이다.
마늘 농사도 올해만 짓는다는 각오이다.
김장 배추 심기는 포기한 상태이다.
다만 올해만은 열심히 지어볼 생각으로 생육을 돕는 비료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필요하면 벌레를 죽이는 약도 쳐볼 생각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창피해서 고개를 못들 지경이니 말이다.
만약 올해도 폐농 수준이며 다른 작물로 갈아탈 생각도 한다.
우선 텃밭에 심을 작물에 대해서 공부를 할 생각이다.
마늘 하면 그 성질과 종류 그리고 맛 등도 알아야 하겠지만,
그네들이 좋아하는 환경과 적절한 수분과 영양분에 대해서도 꼼꼼이 체크할 생각이다.
사람은 물론 식물 역시 좋아하는 환경에서 살고 싶어할 테니 말이다.
아무데나 던져 놓으면 저절로 살아가는 존재란 없는게 아니겠느냐?
그들 역시 인간과 함께 공존해야 할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존중해 주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사랑하고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걸 말이다.
사람에게 하듯 그들에게도 내 마음을 전해볼 생각이다.
말도 걸어보고,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감정도 나눠볼 생각이다.
무엇보다도 모든 존재는 격려와 응원 뿐 아니라 신뢰가 필요한 게 아니겠느냐?
그런데 솔직히 농사일이 내게는 너무 힘든게 사실이다.
30분을 엎드려서 일할 수가 없다.
숨도 차지만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기 때문이다.
머리가 도는 듯 해서 어떤 때는 한참이나 서서 하늘을 올려다 보거나 산을 쳐다 보기도 한다.
농사짓는 농부들이 그런 시간들을 가질 것이라 동변상련을 가져본다.
그래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듯 한꺼번에 해치울 듯 일하지 않기로 했다.
쉬엄쉬엄 천천히 재미삼아 하고 싶다.
오늘은 텃밭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니까 일반적인 얘기를 두루뭉실하게 했고,
다음부터는 작물 하나 하나에 대해서 구체적인 얘기를 할 생각이다.
나와 함께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는 작물들,
우선 유실수인 모과나무 감나무 사과나무 대추나무 체리나무 머루나무와 매실 나무 그리고 아이스베리와
꽃나무인 철쭉 나무 목련 나무 나이 많은 라일락 나무 그리고 노란꽃 나무와
우리 집에서 제일 흔한 꽃잔디와 수선화 제비꽃 그리고 화려한 개 양귀비꽃과 수많은 야생초들,
그리고 대문 양 옆을 지켜주는 정원소나무에게 인사를 나눈다.
그동안 잘 자라주었고 기쁨을 주어서 고마워. 너무 미안하고 너무 고마워.
이제부터는 나도 신경써서 자주 말도 걸고 따뜻하게 보듬어 줄게.
너희들도 날 잘 부탁해!
2018년 4월 22일 부활절 넷째 주일, 주성 청각장애인 교회에서 설교를 마치고 아산에 내려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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