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비도 많이 내리지 않고 태풍도 잦았지만, 저의 텃밭엔 큰 피해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대체로 풍작을 이뤘습니다. 너무 감사하고 또 감사하기만 합니다.
저의 서재는 거실에 덩그랗게 책상을 벽면 책장을 뒤로하고
큰 유리창을 통해서 잔디밭과 텃밭을 바라보도록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손님이 오든 혼자 있든 책상앞에 앉아서 밖을 내다 보며 지냅니다.
쏟아지는 햇살이며 혹은 빗줄기도, 아니면 살랑거리는 봄 바람이나 서늘한 가을 바람도,
거의 다 빼놓지 않고 감상하는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제 인생에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꿈에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는 저의 세상은 언제나 "감사합니다." 라는 마음입니다.
얼마 전에는 모과 나무에서 마지막 모과를 수확했는데,
처음에는 풍작을 예상했지만,대부분 일찍 낙과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자라지 못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옆에 있는 감나무는 수 백개의 감꽃을 피우더니
마침내 100여개의 감들을 끝까지 익어가게 붙들었습니다.
올해는 많은 감을 수확했지만, 상품 가치가 전혀 없어서 나눌 수가 없습니다.
대부분 여기저기 상처가 나고 병이들어서 볼품이 없는 것들 입니다.
그런데 그것들을 도려내고 나면,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은근한 단맛을 내는 일품 간식이 됩니다.
태어나서 이렇게 맛있는 감을 그것도 매일 2개 이상이나 먹을 수 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아무에게도 주지 말고 너 혼자만 먹어야겠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같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관상용 사과는 20여개 따서 먹었습니다.
작지만 사과 맛은 그대로 전해 주는데 작년보다는 작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대신 머루는 문자 그대로 쌔까맣게 매달려 있습니다.
흙이 쓴 때문인지 맛이 별로여서 그냥 관상용으로 눈이 올때까지 둘 셈입니다.
그래서 혹시 미국 서부의 어느 게으른 포도원 농부처럼 아이스 포도를 맛볼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런데 서쪽 창고 옆에 심어두었던 두 그루의 체리 나무에서 수 백개의 열매가 열렸습니다.
물론 초 여름 얘기입니다만,
저는 체리 열매를 맛볼 것을 기대하며 자주 아산에 내려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커지는 것을 보고 의심이 들어 맛을 보니까 체리가 아니라 자두였습니다.
과수 나무를 파는 분에게 체리 나무를 부탁했는데 엉뚱하게 자두 나무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주었습니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어서 따서 먹어도 된다 말한 이웃들에게 실망을 주었으니 말입니다.
화가 나서 자두 나무를 베어버릴까 생각했지만 참았습니다.
내년에는 작은 사과나무 두 그루를 심을 생각입니다.
올해는 잔디 깎이가 크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밧데리 예초기를 구입했는데 처음 몇 번은 많이 힘들었지만, 이젠 요령이 나서 잘 사용합니다.
그래서 잔디 밭을 구경하신 이웃들이나 손님들에게 칭찬을 많이 들었습니다.
잔디 밭은 머리를 깎듯 자주 손을 봐 주어야 합니다.
여름에 비가 자주 오면 생각보다 빨리 자라서 어수선한 느낌을 줍니다.
예초기는 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만 빼고는 아주 성실한 제 역할을 다해 주었습니다.
아직 수확기가 아닙니다만, 금년은 채소 농사 중 최고의 해를 맞은 것 같습니다.
메뚜기 떼가 달려들어 잎에는 구멍이 엄청 많이 나 있긴 하지만 풍작입니다.
두 줄로 골을 세워서 배추도 심고 무도 심었는데 엄청나게 자라주었습니다.
비도 알맞게 내려 주어서 제 힘껏 자랄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모종을 옮기기 전에 대충 뿌린 퇴비가 전부인데 말입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엉터리 농부가 불쌍해서 뜨거운 낮이나 외로운 밤에도
하나님께서 찾아와 주셔서 돌봐주셨음에 분명합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요즘 정치판에 뛰어든 몇몇 개신교 목사들로 인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제 본분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분명합니다.
정치적 관심을 적극적으로 가지는 것을 탓하는 게 아닙니다.
반 기독교적인 말과 행동이 얼마나 눈쌀을 찌푸리게 만드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틴 루터 킹의 연설을 기억합니다.
"나는 꿈이 있습니다. 흑인 아이들과 백인 아이들이 서로 손을 잡고 뛰어 노는 꿈이 있습니다."
흑백 차별에 온 몸으로 저항했지만 그 방법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흑인 대통령을 만들어내는 승리를 거두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몇몇 개신교 목사들은 교회의 문을 아예 닫아 버리게 하려고 합니다.
오늘 일기 예보는 기온은 한 자리 수로 내려가고 구름도 많을 것이라 하지만,
그래도 저의 유리창 너머의 잔디밭과 텃밭은 따뜻한 온기를 전해줄 것입니다.
제 마음에 넘치는 감사함이 젖어있는 한은 말입니다.
참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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