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412호(2018. 12. 6. 목요일).
시편 119:53-56.
찬송 84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너는 어떻게 아직도 그걸 안 봤냐?” TV보기를 좋아하는 친구 녀석의 잔소리가 시작됐습니다. 일이 들쭉날쭉해서 시간 맞추기가 어렵다는 남자의 말에, 친구는 말합니다. “요즘 시간 맞춰서 방송 보는 사람이 어디 있냐? 정주행(正走行), 정주행 몰라? 주말 같은 때 간식 같은 것 옆에 쌓아두고 하루 종일 쭉 몰아서 봐야지. 너 이번 주말에 꼭 봐라. 다음에는 같이 토크 좀 하자. 토크.” 자신을 거의 원시인대하는 양 하는 친구의 전화를 끊고, 남자는 친구가 말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봅니다. 요즘 사람들은 이런걸 보는구나. 솔직히 들어보지도 못한 프로그램이 대부분이어서, 남자는 어느 하나에 눈길을 고정하지 못한 체, 이리저리 홈페이지를 둘러봅니다. 그러다가 남자는 아주 재미있는 문서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의 정주행 파트너는 바로 자신의 반려동물이라는 조사결과였습니다. 반려동물을 정주행 파트너로 삼은 이유도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반려동물들은 채널 주도권을 주장하지 않고, 또 자신이 선택한 프로그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판단하지 않아서 라네요. 실제로 해당 서비스 업체를 이용하는 우리나라 사람의 83%가 반려동물과 함께 시청한 적이 있고,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섭거나 슬픈 장면이 나오면 반려동물을 꼭 끌어안고, 함께 본 프로그램에 대해서 반려동물과 대화도 한다고 하니, 남자는 신세계를 접하는 듯 신기하기만 합니다. 반려동물과 함께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서는, 몇 가지 불편함도 감수해야 하는데, 반려동물이 더 편하게 앉을 수 있게 자기 자리를 옮기거나, 반려동물이 자리를 비우지 않도록 간식을 뇌물로 바쳐야 한다는 그런 내용도 있었는데요. 문득 정주행을 시작하기 전에, 정주행을 함께 할 파트너를 먼저 구해야 하나, 고민에 빠지게 된 보통의 아침입니다.<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8년 11월 30일 방송>
2. 오늘 본문은 어제의 주제 “데살로니가로 다시 가려는 바울(1-13절)”을 이어가는 내용입니다. 신앙이란 중립지대를 허락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대건 신앙 때문에 혹독한 시련을 겪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신앙이 현실적인 삶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기존의 신앙과 충돌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신앙 때문에 전쟁까지 생기는 것은 그리 낯선 일이 아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나라는 다양한 종교들이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종교마다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는데 온갖 노력을 다 기우리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저를 비롯해서 여러분 역시 타종교를 믿는 친구나 일가친척이 한 두 명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저는 불교의 승려가 된 친구를 비롯해서 로마 가톨릭의 신부와 개신교 안에도 다양한 교파에 몸을 담은 이들을 친구로 두고 있습니다. 그 때문인지 그들의 신앙생활에 대해서 대체로 너그러운 편입니다. 무조건 거부하지 않고 귀를 기우려 들어주기도 하고, 제 얘기도 들려주기도 합니다. 그런 친구들 중에는 불교로 개종한 이도 있고, 반대로 불교에서 개신교로 개종한 이도 있습니다.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자신을 대신해서 디모데를 보낸 일화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역시 유대교 와 황제숭배 사상, 그 밖의 토속신앙 등 다양한 종교가 물결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파도에 밀려서 이리저리 흔들릴 수 밖이었습니다. 그런데 디모데가 기독교의 정체성에 대해서 잘 가르치고 인도해서 신앙이 튼튼하고 건강해졌다는 보고를 받고 기뻤다고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사는 보람을 느낀다는 솔직한 마음도 들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신앙이란 어떤 것입니까? 창조주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심지어 죄 된 인간을 위해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를 세상에 보내시고, 우리의 죄를 씻고 구원받도록 하려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다는 것을 믿는 신앙입니다. 그런데 이런 신앙의 바탕에는 하나님의 진한 사랑이 깔려 있습니다. 그것은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이고, 그 사랑으로 하나님과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자고 말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은 말과 역사가 다르고 심지어 종교나 사상까지 다른 이웃들까지도, 사랑하라고 가르친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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